히람의 열쇠와 프리메이슨 – 정리3

“The Hiram Key: Pharaohs, Freemasonry, and the Discovery of the Secret Scrolls of Jesus”의 11장 요약은 저자들이 프리메이슨, 쿰란 공동체, 초기 기독교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장에서 논의된 주요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해문서와 그 중요성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는 쿰란 공동체, 고대 이집트, 그리고 초기 기독교 사이의 새로운 이해를 열었습니다. 저자들은 이 문서들이 프리메이슨 관행과 의식이 쿰란 공동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이러한 연결이 사실이라면 초기 기독교인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프리메이슨과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생각은 많은 현대 기독교도들, 특히 로마 가톨릭을 기겁하게 할 것임에 분명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가 틀림없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를 찾는다.

억압된 발견들

1951년부터 1956년 사이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중요한 종교 문서들은 오늘날 알려진 기독교의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교회와 종교 기관들이 이러한 발견을 받아들이거나 공개하는 데 저항했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려 했다는 비난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저항은 1991년 이스라엘 당국이 사해문서에 대한 공개 접근을 허용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에세네파가 일종의 원시 기독교도들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언제나 증거가 희박했다. 하지만 4장에서 언급했듯 일부 낡은 기록들이 쿰란에 있는 고대 거주지에서 발견되었을 때에 일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서 요르단 고고학 연구소와 프랑스 고고학 연구소, 팔레스타인 고고학 박물관이 G. L. 하딩과 페레 R. 드보 신부의 지도하에 1951년부터 1956년까지 다섯 차례 그 지역을 심도 있게 발굴한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종교계의 다이너마이트였다. 그 일 전체가 극도의 주의를 가지고 취급되지 않으면 기독교 세계가 폭파할 위기에 처했던 것. 하지만 기독교 교회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이 폭발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비밀에 붙여질 수 없었다. 물론 연구를 맡은 자들은 독립적인 학자들이 아니어서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신앙과 제도가 있었고, 그리스도와 신약성서에 대한 관점을 바꿀 증거를 찾은 다른 학자들의 말 또한 침묵당하거나 불신되고 말지만 말이다.
고의적인 진실의 은폐에 대한 고발은 부인당했고, ‘과도한 상상과 고의적인 선정주의 라며 역고소를 당한다. 그후에 40년도 지나서 발견된 800 권 사본의 반 이상이 발행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학계는 전례 없는 은폐에 격분했으며, 캘리포니아 주 산마리노의 헌팅턴 도서관이 광범위한 항의를 주도한 뒤 이스라엘 당국은 1991년 일반인이 사해사본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한 제재를 푼다.

다양한 성경 본문

발견된 여러 성경 본문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단일한 ‘정확한’ 성경 본문의 개념에 도전하는 다양한 성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성경 정경의 정확성과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공식 성경에서 잊혀지거나 의도적으로 제외된 다른 중요한 텍스트의 존재를 강조합니다.

다양한 성서본들이 발견되었고, 그것들 모두 서기 1008년 아론 벤 모세 벤 아쉐르가 발행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 성서들보다 천 년 이상 오래되었다.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 유대교와 기독교 세계는 우리가 지금 보는 구약성서가 얼마나 정확한지 몰랐으며, 아주 사소한 왜곡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쿰란의 동굴 속에 보관된 매우 다양한 문서들로부터 우리는 지금 엄청난 수의 다른 문서들이 있었으며, 그리스어 70인역으로 번역된 것은 그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결국 성서에는 어떠한 올바른’ 버전도 없는 셈이다.

비밀 복음서와 초기 기독교 전통

저자들은 정경 복음서보다 앞선 “비밀 복음서”의 가능성을 논의하며, 이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복음서는 템플 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고 교회에 의해 숨겨지거나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텍스트의 존재는 기독교 역사의 확립된 내러티브에 도전하며, 초기 기독교 관행과 프리메이슨 간의 연결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모턴 스미스와 같은 다른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들 저변에 흐르는 요소가 담긴 비밀 복음의 존재를 추적했는데, 이는 <마가복음>보다 시대가 앞선다고 믿어진다. 만일 예수에 관한 이 비밀 복음서가 기록되어 존재했다면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성전 기사단이 발견한 사본 말이다!
이 가능성은 공동체 일원들이 절대로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비밀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준 쿰란 사본에 의해 나왔다. 기록되어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그의 백성들을 찾아올 때를 대비해 보관되었던 비밀 기록.

어떤 다른 기록에서도 예수에 관한 언급은 거의 또는 전혀 없는데, 이는 요세푸스나 필로, 노老 플리니 같은 역사학자들이 그 당시 주목할 만한 모든 것에 관해 기록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이상한 일이다. 논의한 바 있듯, 독립적인 출처들과 심지어는 그들의 적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통해 역사상의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 기독교의 초기 창안자들은 자신들이 신으로 그리고자 원했던 한 죽은 자에 대한 모든 증거를 잘도 제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과 현대의 유추 분석을 통해 갑자기 많은 추가 정보들이 드러나게 됨에 따라, 초기 로마 교회의 어처구니없는 해석은 진실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

기독교의 기반이 어리석은 실수로 보이게 된다면, 과연 바티칸은 그것이 야기한 폐해를 사과하고 스스로를 접어 그 부와 권력을 유대교 최고지도자에게 물려줄까? 아니다. 분명히 어떤 증거가 나와도 이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아마도 그래야만 하리라. 갑자기 사라지기에 교회는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 존재. 하지만 마찬가지로, 진리를 은폐하는 것 또한 결코 옳은 일이 될 수없다.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임에 틀림없으니. 교회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판단착오로 인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재고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한 오래된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랍비들의 모임에서 그 현명한 남자들은 거룩한 율법의 세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만이 해석에 있어 나머지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게 된다. 그는 양보하라는 큰 압박을 받았지만 자신이 옳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서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 을 증명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하나님, 제발 제가 옳다면 이스라엘 강들이 언덕을 흘러 올라가게 해주소서.” 그 랍비는 간청했다. 즉시 땅의 물들이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와 반대 입장의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나님, 제발.” 이 화난 랍비가 다시 기도한다. 만일 제가 옳다면, 나무가 땅으로 휘게 하소서,” 그리고 정말 나무들은 땅 쪽으로 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동료들은 양보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하나님,” 그는 커져가는 좌절감 속에서 소리쳤다, “큰 소리로 제 편을 들어 주소서.” 즉시 구름이 흩어지고 큰 음성이 하늘로부터 울려 퍼졌다. “나의 친구들아, 내가 할 말이 있도다. 너희들이 잘못이고 그가 옳도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도다.” 이에 그 고독한 랍비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감동받지 않았다. “오, 우리는 하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했다. “왜나하면 이 문제에 관한 올바른 결정은 이미 오래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종교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래된 성서는 아무리 정확하지 않다고 해도 그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종교는 전혀 역사적 진실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세계에서는 맹목적인 신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니, 턱 없이 부족하다. 또, 만일 종교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외면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교리를 진리보다 위에 두는 것은 전혀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다.

쿰란 공동체와 그들의 신앙

쿰란 공동체는 스스로를 “빛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며, “빛의 왕자”라고 부르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했습니다. 이 메시아는 “어둠의 왕자”와 악의 세력에 맞서 최후의 전투를 이끌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자들은 쿰란 공동체 내의 비밀 의식과 암호 사용을 탐구하며, 이들이 프리메이슨 전통과 연결된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 날 에 관한 미드라시’ 리는 제목의 사본은 어떻게 ‘사탄의 자식들이 빛의 아들들 에 대적하여 사악한 계획을 꾸며 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할 것 이며, 열방의 왕들이 마지막 날들에 이스라엘의 선택된 자들에 대해 어떻게 격노할 것인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2명의 메시아적 인물들의 손으로 그의 백성을 구할 것이다. 한 명은 다윗의 가지 에서, 다른 한 명은 ‘율법의 해석자’ 로부터 올 것이었다.

사본을 연구하던 우리는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정보와 하나님이 밝히신 어떤 의식들을 담고 있는 비밀서들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구전을 통해서만 선택된 사람들에게 전해졌던 것이 이제 기록으로 성문화 된 것이다. 철저히 제한되었던 이 비밀들은 ‘최후의 날’이 올 때까지 신실하게 보존되도록 비밀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쿰란 문서에 관한 대부분의 초기 작업을 주도했던 J. T. 밀릭 신부는 암호를 사용한 비밀 사본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 예가 히브리 문자 대신 다른 2개의 알파벳을 사용하여 임의적인 기호들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또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글자의 순서 대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인 문서도 있었다고 한다.

아트바시 암호와 프리메이슨 연결

사해문서에서 발견된 아트바시 암호는 이름과 개념을 암호화하는 방법으로, 프리메이슨 전통과의 놀라운 연결고리를 드러냈습니다. 예를 들어, 템플 기사단의 신비로운 우상 “바포멧”은 암호 해독 결과 “소피아”, 즉 지혜를 의미하며, 이는 영지주의와 프리메이슨 모두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또한, 저자들은 “타초Tajo”라는 이름이 사해문서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해독 시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프리메이슨 전통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아삽”과 일치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그들이 이집트 왕들의 영적 후손이며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의 선조였다는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주었다. 그중, 한 중요한 증거가 초기 사해사본 팀의 일원이자 노벨 평화상 후보였던 휴 숀필드 박사 덕분에 빛을 보았다. 박사는 많은 사본 속에서 개인들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 암호를 발견하고는 아트배시 암호Atbash cipher’ 라고 칭한다. 놀랍게도, 1988년 죽기 전 숀필드는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 모두에 의해 사용된 핵심 단어들 자체가 아트배시 암호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성전 기사단은 바포메트’ 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무언가를 숭배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었는데, 아트배시 암호로 푼 결과 ‘소피아, 즉 그리스어로 지혜’ 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성전 기사단과의 분명한 관련이 놓여 있다. 나아가 그 후의 프리메이슨과도 말이다. 스페인어로 그랜드 마스터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필명이었던 메이슨 단어 타초Tajo’에 아트배시 암호를 적용해보니. 한 남자(아삽)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시편>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최고의 성전 건축을 도왔던 자다.

모세와 비밀 전통

이 장은 모세에게 귀속된 비밀 전통을 탐구하며, 모세가 “마지막 날”에 드러낼 신성한 텍스트를 숨겼다는 전설을 다룹니다. 저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자신들이 종말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모세의 지시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 아래에 이 텍스트들을 숨겼을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만약 템플 기사단이 이러한 텍스트를 발견했다면, 이는 프리메이슨과 기독교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편, 이 신비한 쿰란 사본들 중 일부의 주제는 노아 및 에녹과 관계가 있는데, 이들은 몇몇 입문자들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하늘과 땅의 신성한 비밀을 받은 자들이었다고 전해졌다. 인류의 신화적인 조상들은 뛰어난 지혜를 가진 남자들이었다는 고대의 믿음이 있었으며, 에녹과 노아를 신성한 비밀을 가진 자들로 그리고 있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의 묵시문학에 등장할 뿐 아니라, 다른 미확인 출처에서도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에녹의 이름에 관련된 비밀이 설명되지 않고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이 출처가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부활 의식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슨 문학에는 노아를 소생시키기 위한 셈과 야벳, 함의 노력과 관련된 오래된 의식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메이슨 부副등급 아크 마리너(즉 방주 선원) 또한 이 노아의 비밀 전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모세와 에스라(제2의 모세로 알려진)라는 두 인물에 관련된 묵시적 전통의 비밀 가르침들에는 휠씬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것보다 휠씬 더 광범위한 집필이 있었다고 오늘날 여겨지고 있는데, 그중 살아남은 것이 바로 <모세 승천기>다. 이는 에세네파의 작품으로 알려지며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준 가르침이 포함된다.

‘이 기록을 받으라, 너는 내가 네게 전할 책들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알리라. 너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삼나무 기름으로 바르고 질그롯에 넣어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드셨던 장소에 보관하라.’

이 언급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숨겨두라며 준 비밀서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최후의 날에 너를 찾아오실 회개의 날까지..’

이 모세와 관련된 비밀 기록은 즉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이집트 왕들의 비밀을 알던 유일한 자였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그는 최후의 날 이전의 어떤 순간에 이 비밀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시작부터 만들었던 장소’에 보관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장소는 유대인들에게는 오로지 한 곳밖에 없다. 즉 예루살렘 성전 안쪽 지성소 아래에 있는 바위. 바로 이곳이 최초의 창조 지점이었다. 우리는 쿰란인들이 자신들이 쓴 사본들과 더불어 유대 땅 근방에서 얻은 문서들을 거주지 뒤의 동굴에 숨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율법을 열심히 공부했던 그들이 분명히 이 모세의 가르침을 따랐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종말’이 그들 생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믿었던 그들에게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만일 성전 기사단이 지성소’ 쪽과 그 아래를 발굴했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우리가 점점 확신하게 되는 대로) 분명히 그들은 이 비밀 사본들을 찾았을 것이라는 얘기 가 된다.

극도의 흥분이 우리를 감았다. 정녕 우리가 모세로부터 전해 내려져 온 비밀이 헤롯 성전 아래에 문혔다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억지 주장은 즉각 커다란 가능성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모세 승천기>의 배경에 대해 좀 더 조사해보기로 했다. 학계에서는 이 기록이 아마도 예수 생애 동안 쓰였으며, 셀레우코스(고대 그리스의 왕조로. 기원전 312~64년에 소아시아의 대부분 및 시리아.페르시아.박트리아. 바빌로니아 등을 포함하는 왕국을 지배함.) 시대와 그 후 헤롯 대왕의 하스몬(기원전 2세기 안티오코스 4세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제사장 가문인 마카베 가의 후손들) 시대까지 유대인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 언급은 일반적으로 헤롯 대왕 때의 것으로 보이는 반면,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박해 시기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68 ~165 재위의 시리아 왕으로, 유대를 침공하여 강압적 폭정을 펼치며 그리스 문화와 종교 혼합주의를 강요함으로써 유대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삼)의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따라서 이 장이 잘못 놓인 것으로, 더 앞쪽에 두어져야 한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신비스런 인물 타초Taxo가 등장한다. 그는 아들들에게 신앙을 저버리느니 자신과 함께 동굴로 가서 죽자고 한다. 그들의 죽음은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중재와 그의 나라의 설립을 촉발시킬 것이다. 이 나라는 지상에 세워진 나라라기보다는 하늘의 왕국으로서 이해된 것으로 보인다. 타초를 역사적인 인물로 확인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가운데에 일부 저자들은 그를 의의 스승으로 보고자 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모세가 비밀을 묻도록 가르쳤음을 확인했다. 한편, 우리는 사본의 기원을 예수시대 이후로 두고 있는데, 이는 공동체 전체가 ‘종말의 때 가 오기 전의 위대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던 때로. 우리를 흥분시킨 것은 타초’ 라 불리던 미확인 인물에 대한 언급이었다. 우리는 이미 Taxo와 Tajo가 같은 이름이며 아트배시 암호에 의하면 타초를 아삽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바로 예루살렘에 최초의 성전을 지을 때 솔로몬을 도왔던 자이며 프리메이슨이 그랜드 마스터를 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타초’는 더 이상 신비에 싸인 이름이 아니다. 사본에서 밝혀진 쿰란인들이 사용한 아트배시 암호가. 그것이 공동체의 마스터, 즉 최후의 날의 의의 스승을 언급하고 있다는 초기의 추정을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문서에 나온 간곡한 권고인 신앙을 저버리느니 함께 동굴로 가서 죽자 또한 프리메이슨의 제3등급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이는 히람 아비프가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에 한 말로 요약되는 ‘죽음도 불사하는 신의 의 개념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신성한 신의를 저버리느니 죽음을 택하겠소.

이 증거로부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가 솔로몬 성전의 원래 건축자, 즉 프리메이슨이 오늘날 히람 아비프라고 부르고 있는 자의 영적 후계자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메이슨 제3등급 의식과의 관련성은 우리의 역사 퍼즐에 맞아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메이슨을 상징하는 다른 주요 모티브에 대한 설명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프리메이슨의 처음 두 등급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등장하는 두 기둥의 이야기가 어떻게 성전 기사단에게 전해질 수 있었는지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주요 요점

  • 이 장에서는 프리메이슨이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프리메이슨 전통과 연관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 사해문서에는 기존의 기독교 정경에 도전하는 중요한 종교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비밀 복음서와 가르침의 존재를 시사합니다.
  • 사해문서에서 발견된 아트바시 암호의 사용은 쿰란 공동체와 이후의 프리메이슨 관행을 연결시킵니다.
  • 이 장은 이러한 발견들이 종교 기관,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결과와 종교적 담론에서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요약은 11장에서 제기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아이디어를 잘 encapsulates하여 프리메이슨, 쿰란 공동체, 초기 기독교 간의 역사적 연결 가능성 및 현대 종교 기관에 미칠 광범위한 영향을 강조합니다.

“The Hiram Key”의 11장 “보아스와 야긴”에서는 이 두 상징적인 기둥이 쿰란 공동체, 초기 기독교, 그리고 프리메이슨과의 연관성에 대해 깊이 탐구합니다. 저자들은 예수 시대의 여러 유대교 분파 중 하나로 종종 잘못 인식되는 쿰란 공동체가 실제로는 유대인의 정체성과 종교적 열망의 중심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스스로를 예수 가르침의 후계자로 거짓되게 삼은 로마 가톨릭과. 자신들이 다른 교파들을 연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잘못 믿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에세네파/쿰란파를 그저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존재하던 많은 교파 중의 하나로만 여기고 있다. 이것은 쿰란 공동체를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수호자들로서, 또한 백성의 모든 열망의 구현체로서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던 모든 것들의 정수였다. 유대인다움의 핵이었던 셈이다.

주요 내용:

  • 1. **쿰란 공동체와 그 중요성:
    • 쿰란 공동체는 “유대인의 본질”로 강조되며,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유대인들의 희망을 상징하는 집단으로 설명됩니다.
    • 사해 문서에 언급된 “의로운 스승”의 정체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를 공동체의 창시자와 후대의 영적 지도자, 즉 예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의로운 야고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 로버트 아이젠만 교수와 마이클 와이즈 교수는 독립 연구자로서, 이 쿰란파의 지도자가 그리스도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그 야고보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바로 쿰란 공동체였다는 말이 된다.이에 대한 초기의 언급은 2세기의 역사가 헤게십푸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야고보를 그리스도의 형제 의인 야고보’ 라고 부르며, 나사렛인인 그가 성전의 지성소에서 민족을 대변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재했다고 한다. 이 역사가는 야고보를 포도주도 안 마시고 육식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사장의 흰 아마포 옷을 입고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못이 박였던 의인 야고보’ 라고 설명하고 있다.
  • 2. **두 기둥 – 보아스와 야긴:
    • 보아스와 야긴 기둥은 단순한 상징 이상으로 쿰란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영적 및 사회적 개념을 나타냅니다.
    • 보아스는 왕권과, 야긴은 제사장직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은 신성한 질서와 의로움의 구현으로 여겨지며, 이후 프리메이슨에 영향을 미칩니다.
    • 이 기둥들은 솔로몬의 성전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름과 상징성은 메이슨 전통으로 이어집니다.
    • 공동체 규율서로 알려진 다른 사본에 따르면, 공동체 위원회는 12명의 평신도와 공동체의 기둥들” 이었던 제사장들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2개의 주요 기둥이 고도로 상징적인 것으로서 하늘나라’ 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왕과 제사장의 측면들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이 용어는 절대로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야훼가 영속적인 평화와 번영 속에서 유대인들을 통치할 이 땅위의 존재를 가리켰다. 당연히 이 영적인 기둥들은 솔로몬 성전의 동쪽 문을 장식한 전설적인 보아스와 야긴으로, 공동체에 전해 내려온 통일 이집트의 기둥의 후손이었다. 이 경건하고 걱정 많은 유대인들에게 그 기둥들은 왕의 권력인 미시팟mishpat과 제사장의 권력인 체데크tsedeq를 의미했다. 이 둘은 합쳐졌을 때에 하늘의 위대한 입구를 지탱하는데, 그 쐐기돌은 히브리인들에게 위대한 단어 중 하나인 샬롬’이었다.
    • Shalom
      Mishpat (Boaz)
      Tsedeq (Jachin)
  • 3. **프리메이슨과의 연결:
    • 저자들은 쿰란 공동체의 신념과 현대 프리메이슨의 관행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며, 특히 기둥과 같은 상징물의 사용을 강조합니다.
    • 프리메이슨은 이 상징들을 물려받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잃어버렸다고 저자들은 주장합니다.

오른쪽 기둥은 프리메이슨에게 야긴 으로 알려지는데. 그는 성전의 최초 대제사장이었다. 따라서 이것이 쿰란파에기 ‘tsedeq 의 기본 개념 속에서 구현된 거룩함이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어( Zedek 로 쓰이기 도 하는)는 대개’ 義 ‘로 해석되는, 신성한 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을 의미한다. 또. 근본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개념 마트’와 같은 것으로. tsedeq 는 가나안인들에게 태양신과 관련된 용어였다. 가나안의 태양신은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숨겨진 죄악의 어두운 행위들 위에 빛을 비추어주며 세상을 돌보아주는 위대한 판관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가나안 의 신앙을 자신들의 야훼 개념 속에 집어넣으면서 이 tsedeq’가 하나님의 특성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작물을 자라게 하여 자신의 백성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적들을 무찌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야훼의 능력들은 tsedeq’ 의 일부분이었다. 또, 이 단어는 태양 빛과 관련이 있었고 어둠과 혼돈의 반대개념이었다.”
물론 태양 숭배는 수메르 문명에서 나온 대부분의 종교에서 너무 일반적인 것이라 별로 특별한 점이 없지만, 이집트의 주요 신이었던 아멘-레와 야훼 간에는 흥미로운 유사성이 있다. 둘 모두 어둠과 혼돈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빛의 좋은 힘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솔로몬 왕 성전의 원쪽 기둥은 보아스로 불렸는데. 모든 프리메이슨이 알고 있듯 그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증조부였다. 쿰란파에게도 이것은 다 윗의 집과 mishpat’ 의 개념을 의미하는 왕의 기둥이었다. 이것은 공의. 정의’ 등으로 번역되지만 그 이상을 나타낸다. 왕으로서의 야훼의 통치를 의미했고, 따라서 그 자체가 신이 정한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다.

쿰란 공동체의 고위층들은 이 상징을 통해 공동체의 전체 본질과 사명을 이해한다. 그러고는 이를 모세의 미드라시적 가르침에 따라 기록하여 혜롯 성전 아래에 묻는다. 이것을 후에 성전 기사단이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상징들을 계승했지만 그에 따른 의미는 잃었다. 쿰란 종파는 ‘최후의 날 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이 기둥에 맞는 인물 들을 급히 찾아야만 했다. 하나님은 새로운 틀이 자리 잡기 전에는 이전 질서를 파괴하실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마에게 점령당하고 예루살렘에 거짓 대제사장이 판치는 상황에서, 이 자리들은 당장 채워질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대신 임명된’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로 불리는 자들 이었다. 바로, 기다리던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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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에세네파의 수도원이 자리 잡은 위치를 가리키는 현대 아랍어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후에, 동판 두루마리(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여러 문서 중의 하나)를 완역한 故 존알레그로의 책 복사본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쿰란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알았던 셈족 언어학자 알레그로는, 그 기원을 설명하고 그것이 예수와 야고보 시절에는 키므론Qimron’ 으로 불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알레그로가 알아낸 의미는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 그저 자신의 책에 재미있는 여담으로 언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쿰란의 어구상의 뿌리는 둥근 천장. 아치. 출입구 등이다. 쿰란 종파는 자신들을 아치형 출입구로 여겼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그들은 아치를 이루고 있는 기둥들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tsedeq’와 mishpat 기둥 들이 출입구를 이루고 있는 거룩한 아치 샬롬’

  • 4. **초기 기독교에 대한 쿰란의 영향:*
    • 쿰란 공동체나 관련된 분파가 야고보가 이끈 예루살렘 교회였으며, 예수가 그들의 영적 계층에서 중심적인 인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 저자들은 예수가 쿰란 공동체 내에서 입문 의식을 거쳤으며, 이는 그의 가르침과 사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제안합니다.
    • 요한 세례자에 의한 예수의 세례는 이 공동체로의 입문 의식으로 재해석되며, 요한은 중요한 영적 인물 또는 “의로운 스승”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 5. **역사적 및 종교적 논란:
    • 이 장에서는 요한 세례자가 처음에는 메시아로 간주되었고, 예수의 메시아적 역할이 처음에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관점을 도전합니다.
    • 이 성서적 사건들의 재해석은 쿰란 관습과 초기 기독교 의식 사이의 더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제시됩니다.
  • 6. **기둥의 상징성:
    • 이 장의 결론에서는 쿰란의 보아스와 야긴 기둥이 왕권과 제사장직의 결합을 상징하며, 이러한 주제가 초기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을 통해 계속 이어져 왔음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 저자들은 쿰란 문서에서 이 기둥들이 공동체의 이중 메시아적 기대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는 다윗의 혈통(왕권)에서, 다른 하나는 아론의 혈통(제사장직)에서 온다고 설명합니다.

결론:

이 장은 쿰란 공동체, 초기 기독교, 그리고 프리메이슨을 공유된 상징과 영적 신념을 통해 연결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흥미로운 논지를 제시합니다. 보아스와 야긴의 상징성은 이 서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며, 이는 영적 및 세속적 권위의 결합을 나타내며, 저자들은 이러한 개념이 종교와 메이슨 전통을 통해 세기를 거쳐 전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성서에 있는 <레위기> 보다 아마 더 오래되었을 <레위기>의 단편들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기록에는 메시아에 대한 언급들이 있는데, 이는 그 집단이 다윗계(왕의 ) 메시아보다는 레위계(제사장의)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을 보여준다. 또, 우리가 본 문서의 번역본들은 저자들이 국가 지도자와 함께 그 위에 제사장 지도자를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론(제사장)과 이스라엘(왕)의 메시아들 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다메섹 문서와 같은 많은 다른 쿰란 문서들이 이 아이디어를 확인해주고 있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레위기>가 더 강력하게 논지를 입증해준다. <마태복음> 3:3에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로 설명되어지는데 이는 정확히 쿰란 공동체가 사용했던 말로,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가 메시아가 되게 하기 위해 성서를 바꾸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이후의 <누가복음>이 쓰인 시기에도 세례요한이 메시아일 것이라고 여겨졌다는 사실이 기억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복음> 3: 15의 말씀이다.
‘백성이 기대하고 있었고 모든 사람이 그들 마음속에 요한에 관하여 그가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생각하니’

성경을 역사적인 이해보다 개인적인 은혜를 위해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을 아마도 대충 읽어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다. 즉 어떤 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모두가 요한을 메시아의 제1 후보자로 보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과 예수가 공동 메시아라는 것은 지난 40년간 정통 기독교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온 바다. 논의한 바 있듯, 남부 이라크의 만데안파는 나사렛인들의 후손이다. 그들은 쿰란인들이 에베소, 터키나 이집트 코끼리(엘레판틴) 섬에서 발견된 것들과 같이 그저 은둔적인 에세네식 공동체가 아닌 하나의 종교조직을 이루면서, 세례요한이 자신들 종파를 창시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메시아였다는 그들의 신앙에 너무 이질적이고 위협적으로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헬레니즘화되고 미신적으로 타락한 히브리 용어에 집착하는 자들만의 문제다. 만일 그 단어가 원래의 바른 의미로 주어진다면 요한을 제사장 메시아로, 예수를 mishpat 기둥, 즉 왕 메시아로 보는 것이 당연해진다.

요한은 광야에서 힘든 생활을 하며 흐르는 요단 강물에 사람들을 담금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정화시켰다. 이는 수조의 고인 물을 사용해야 했던 쿰란인들이 선호하던 방식이었다. 그는 쿰란인들의 의의 화신으로서 오로지 메뚜기와 야생 꿀만 먹으며 가죽 띠와 낙타털 겉옷만을 걸쳤다. 요한은 자신의 관점에서 완전히 부패한 예루살렘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설교를 하며, 모인 자들에게 회개하고 에세네/쿰란 종파의 정화의식인 세례를 받을 것을 촉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요한이 의의 스승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우리는 이를 지지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신약성서에 설명된,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이야기는 후대의 복음서가들이 기적을 바라는 기독교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과장한 것이다. 하지만 재구성된 출처 자료는 이 두 중요한 남자들 간의 관계 위에 유용한 빛을 비춘다.

이것은 예수에게 세례를 준 요한이 마가가 창조해낸 인물이었으며, 요한은 그의 제자들이 북쪽에서 온, 새로운 지혜로운 스승에 대해 말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예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제자들은 그때 심지어 로마의 백부장조차도 일반 유대인들보다 더 믿음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쿰란 공동제의 중심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또, 다윗의 혈통일 뿐 아니라 매우 재능 있는 학생으로 소위 요한에 의한 세례는 쿰란 공동체로 드는 예수의 1단계 입문식이었을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둘기를 예수가 본다는 설명은 지혜를 얻는 것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히브리 방식이었다.

세례가 끝난 뒤 예수에게 일어난 일은 더 흥미롭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그는 광야로 들어가 그곳에서 40일 밤낮을 금식한다. 신약성서는 그가 금식 후에 광야를 떠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으며, 흠정역 성서는 그가 서기 27 년에서 31년까지 3년간 거기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야라는 용어가 사해사본 전반에 거쳐 쿰란 공동체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실제 사막에서 홀로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광야’ 의 그 당시 용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 의미에 관해 확신할 수 있다. 즉 예수는 쿰란에 머물면서 형제애의 최고 등급에 이르기 위해 3단계의 입문식을 거친다(기억할 것이다. 각각은 정확히 1년이 걸렸다는 것을!). 여기서 그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다른 나라 지도자들로부터의 뇌물을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 3년을 보낸 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모세로부터 내려오는 부활의 비밀 기법과 주문을 배운다. 이는 입문자를 비유적인 무덤에서 일으켜 세워 신실하며 바른 삶으 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그 후 1년을 공동체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살았던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서기 32년 초 요한이 죽은 뒤, 그는 다가올 ‘하늘나라’ 를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시킬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규율을 접는 것이


Chapter 11: 보아스와 야긴 페세르 – 요약 및 결론

11장은 쿰란 공동체와 프리메이슨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와 성전 기사단, 초기 기독교 사이의 깊은 연결 고리를 탐구합니다. 저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쿰란 공동체가 사해사본의 저자임을 밝혀내고, 에세네파, 나사렛인, 예루살렘 교회가 동일한 집단을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들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주요 결론:

  • 1. **쿰란 공동체의 중심적 역할:
    • 쿰란 공동체가 유대교의 영적 중심이었으며, 그들의 종교적 이상은 초기 기독교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와 나사렛인, 예루살렘 교회와 동일시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해사본의 저자들이며 유대 종교의 본질을 상징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 2. **하스몬 왕조와 성서 해석:
    • 저자들은 하스몬 왕조를 검토하면서, 로마 가톨릭 성경과 흠정역 성서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가톨릭은 하스몬 왕조를 유대의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개신교는 그렇지 않으며, 이는 쿰란 공동체와 17세기 영국 국교회 간의 관계를 시사합니다.
    • 이 관계는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을 통해서만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 하스몬 왕조를 검토하면서 우리는 로마 가톨릭 성경이 흠정역 성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흠정역 성서에서는 첫 번째, 두번째< 마카베서>가 누락되었다. 가톨릭은 하스몬인들을 유대의 영웅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 신교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 이는 반 하스몬 쿰란인들과 17세기 영국 국교회 간의 관계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직 성전 기사단/프리메이슨 경로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 3. **프리메이슨과 쿰란 공동체의 유사성:
    • 저자들은 쿰란 종파와 프리메이슨 사이의 많은 유사점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입문식에서 금속 물질을 금하는 것과 같은 관습들이 있습니다.
    • 사해사본은 그들이 형제애와 진리, 정의, 친절, 공정, 정직, 겸손을 중시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들은 이를 통해 쿰란 공동체가 이집트 왕들의 영적 후계자이자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의 선조임을 주장합니다.
  • 4. **비밀 전통과 기둥의 상징:
    • 저자들은 쿰란 종파가 신성한 의식들을 구전으로만 전해왔으며, 이 의식들이 암호화된 형태로 비밀 문서에 남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또한, 저자들은 성전 기사단이 쿰란 공동체의 <모세 승천기>를 기반으로 지성소를 발굴해 비밀 기록들을 찾았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 5. **솔로몬 성전과 히람 아비프의 후계자:
    •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는 솔로몬 성전의 원래 건축자인 히람 아비프의 영적 후계자로 여겨졌습니다.
    • 저자들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사해사본에서 언급된 ‘의인 야고보’였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고 확신합니다.
  • 6.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
    • 쿰란 공동체는 ‘샬롬’을 그 중심으로 한 ‘기둥’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야훼의 쐐기돌 역할을 했습니다.
    • 저자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가 한동안 공동 메시아였으나, 요한이 처형된 후 예수와 야고보 사이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하며, 이 시기의 사건들을 더 깊이 조사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초기 기독교와 프리메이슨 전통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의 신념과 의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 챕터는 쿰란 공동체와 프리메이슨의 유사성, 성전 기사단의 비밀 전통, 그리고 예수와 그의 형제 야고보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를 제공합니다.


Chapter 12 요약: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Chapter 12는 예수의 역사적, 종교적 역할과 그가 수행한 초기 기적들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를 다룹니다. 이 장은 예수의 사역이 세례 요한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어 그의 십자가형으로 끝나는 단 1년 동안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는 정치적 내분과 고난을 겪었으며, 특히 예루살렘과 쿰란에서 불인정받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저자들은 예수가 쿰란 종파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로마에 대항한 전사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주장합니다. 예수는 자신을 야훼의 전사로서 승리를 이끌 인물로 보았고, 이를 위해 “천둥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과 함께 군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습니다.

예수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기적은 단순한 마법적 행위가 아니며, 이는 쿰란 종파의 전통적 의식과 연결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해석됩니다. 물에서 포도주로 변화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정화된 자”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가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외부 사람들을 내부 종파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행한 일련의 의식 중 하나였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저자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쿰란 공동체에서 새로운 멤버가 종파의 일원이 되는 의식임을 강조합니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복음서들에 기록된 기적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장에서 저자들은 예수가 추종자들에게 가족과의 모든 연을 끊도록 요구했음을 설명하며, 그가 가르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극도로 가차 없는 인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 있는 이러한 극단적인 요구는 복음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예수와 그의 가족들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설명도 등장합니다.

**주요 인용문:**

  1. “예수는 군사적인 목표를 가졌다.”
  2. “우리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기’라는 말이 흔히들 쓰는 표현으로, 영어 표현 ‘암돼지 귀로 비단 지갑 만들기’와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 “예수가 추종자들에게 가족과의 모든 연을 끊으라 고 요구했던 그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에 극도로 가차 없는 자였던 것 이다.”

예수는 ‘구세주이신 요셉의 아들’ 을 의미하는 Yahoshua ben Joseph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자신의 부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기록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가 제자들에게 이 땅 위의 누구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마태복음> 23:9). 제자들은 가족을 거부하고 가족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도록 종용되었다. 그래야 그들이 그 집단에만 충성을 다할 수있기 때문이 었으니. 주기도문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낳아준 부모 대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 로 부르도록 가르쳤다. 이 점에서 불 때에. 이를 들은 헬레니즘화된 이방 기독교도들이 어떻게 유대인의 정신을 오해하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예수가 물리적으로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이 라고 믿게 되었는지 쉽게 상상이 간다. 그가 자신을. 그 당시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자에게 붙여졌던 흔한 호칭인 인자he son of man’ 라고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신을 장자로 하는 이 설명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새로운 다윗 자손 왕이 될 남자로서 그는 야훼를 위한 이 땅의 유일한 통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성서에 기록된 주기도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 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 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읍시고 우리가 우 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cmpation에 들게 하지 마읍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읍소서(나라와 관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읍나이다 아멘).

이는 예수와 그의 측근들의 용어 및 의도에 대한 이해로부터 다음과 같이번역될 수 있다.
야해여. 그대의 이름은 위대하움나이다. 이스라엘은 당신의 나라입니다. 당 신이 지키시는 거룩한 규율들은 이스라엘에 세워질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 가오기 전에 우리를 지켜주소서. 우리가 우리를 저버린 자들을 용서하듯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한 규율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를 용서하시옵소서 또한 삶이 너무도 힘들어 우리의 믿음이 시험당하지 않도록 하읍시며, 우리의거 룩한 노력 가운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영원토록 이스라엘은 당신의 것이며. 통치권과 영광도 그러하읍니다. 그렇 게 되어지이다.

‘시험tempation 이라는 단어가 현대 영어에서 사용될 때에. 다소 다른 함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쾌락 에 저항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누군가 얼마나 큰 벌을 견더낼 수 있는지 를 보는 의미에서 사실상 ‘시험test’ 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비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위해 이 이스라엘의 기도 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예수가 유대 신에게 이스라엘에서의 민족자결권을 바라는 기도였던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형 제들’ 및 이웃들’ 과 같은 용어들 또한 전체 세계가 아닌 공동체의 구성원 들만을 언급한 것이었다. 우리가 바꾸어 쓴 주기도문은 단순히 단어의 구 성이라기보다는 의미의 해석이다. 예수가 사용했던 단어들이 전적으로 현 지 유대의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아낸 것이 아니 라. 오늘날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피크의 성서 주해> 와 같은 정통 기독교 작품들에서조차도 그러하다. 이렇게 하여. 주기도문이 예수가 유대인들을 외세의 지배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자 신의 정치적 노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 학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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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산자와 ‘죽은 자’ 라는 표현은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시대에 사용된 용어로 보였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든 증거들을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독보적이고 뛰어난 스승에게 엄청난 폐를 끼치는 것이다. 썩어가는 시신이 생명을 되찾았다는 생각은 그시대 모든 유대인들을 혐오스럽게 했을 것이며. 현대 기독교인들이 그 런 일들이 사실로서 이야기되었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그다드 에서 마법 양탄자가 일상적인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만 큼이나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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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수가 일당을 만드는 것이 그의 형제 야고보에게 곧 포착된다. 예수의 본질적인 교의 중 일부는 신약성서에서 제외된 그 당시 작품들에서 얻을 수 있다. <도마(예수의 쌍둥 이 형제)복음서> 제114절에 보면. 예수는 여성도 남성들과 동등하다는 자신 의 믿음을 피력한다.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다. ‘여자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으 니. 마리아를 우리 가운데에서 내보내자.”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그녀 또 한 너회 남자들처럼 살아 있는 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마리아를 이끌어 남 성으로 만들 것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들 어갈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자들이 “영생” 을 누릴 자격” 이 없다고 말하는 시몬 베드로는 모든 여자가 죽임을 당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공동체 최고위 등급의 일원들( 살아 있는 자들’ )이 비밀 사안을 논의 하는 동안 마리아가 그 방에서 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녀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세워’ 최고 등급의 최초의 여자 일원이 되게 하고, 모든 여자들이 그럴 권리가 있다고 예수가 대답하자 추종자들은 분명히 놀 랐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급진적인 스승의 입 에서 나온 것이 틀립없는 이 구절로 볼 때에, 많은 남성 성직자들이 오늘날 여성들이 성직을 갖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에 실망스럽지않을수 없다.

왕 기둥의 체포

시간과 비밀 유지의 전략적 중요성

예수는 로마 당국과 사두개파에 대항하는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비밀과 타이밍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외딴 장소에서 몰래 집회를 열고 설교를 했습니다. 제임스와의 내적 갈등, 특히 예수의 이중 역할인 왕 메시아와 제사장 메시아로서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의 정보망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즉각적인 위협이 없다고 보고했고, 이는 그의 자신감을 더욱 높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극적인 입성

예수는 예언된 이스라엘의 왕임을 알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그는 스가랴 9:9의 예언을 성취하며 나귀의 새끼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이 행동은 로마 당국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동시에, 이스라엘을 외세로부터 구원할 예언된 왕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외칠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나니, 어린 나귀, 곧 나귀의 새끼를 타신다.” (*스가랴 9:9*)

저자들에 따르면, 예수의 추종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하는 것은 최대한의 주목을 끌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어 성전에서 환전상들의 탁자를 뒤엎어 성전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성전 사건의 결과

이 도발적인 행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예수의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로마와 유대 당국은 예수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임스가 체포되었고, 예수의 초상화가 들어간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으나, 신성 모독을 우려하여 나중에 파기되었습니다.

당연히 야고보는 체포되었고 예수의 얼굴을 그린 현상수배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었다. 물론 이에 대한 모든 복사본들과 참고문헌들은 하나님의 완벽성을 흠가게 한다는 우려 속에서 오래전에 파괴되었다. 하지만 본디오 빌라도의 장교들에 의해 나온 현상수배자를 묘사한 기록, ‘포르마’ 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은 요세푸스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 점령 Capture of Jerusalem.>에서 이를 기록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 는 남자를 체포하기 위해 영장이 발급되었고, 그 스승을 신고한 자가 바로 유다였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외모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 중 하나로, 슬라브어 문서에 보존된 예수의 외모에 대한 설명은 전통적인 기독교 이미지와는 크게 다릅니다.

> “단순한 외모의 성숙한 나이의 남자, 어두운 피부색, 작은 키, 세 규빗의 신장, 약간 굽은 허리, 길쭉한 얼굴, 긴 코, 만나진 눈썹, 드문드문한 머리카락과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모습.”
. .평범한 외모에 진한 피부색. 작은 체구, 3큐빗의 키, 긴 얼굴에 급사 등이, 코가 길고 눈썹이 맞붙은 성인 남자. 성성한 머리카락은 머리 가운데 에서 나뉘고 나사렛인의 태도에 빈약한 터수염을 가진 자로, 무서운 인상을 풍긴다.

이 묘사는 예수를 4피트 6인치도 안 되는 작은 키의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가진 인물로 그립니다. 저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런 묘사를 고의로 바꾸거나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헬레니즘 세계는 왜소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메시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3큐빗의 키는 4피트 6인치(약 140센티미터)가 안 되는 키로, 곱사등에 심 한얼굴 생김새와 합쳐져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특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 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궁전에서 태어 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신에게 아름다운 용모나 큰키는 중 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것. 그 당시 만 일 예수가 작고 못생긴 남자였다면 헬레니즘으로 물든 세계는 절대로 그를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했을 것이다. 예수가 매우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는 추가 증거가 있 다. <요한행전>(신약성서에서 제외된)은 예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두려워 물자., 그가 돌아보니., 작은 체구의 남자였더라. 그는 내 턱수염을 잡아당기며 내게 이르되. “요한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의심 없이 믿으라.’

<누가복음> 19:3에는 군중 속에서 예수를 보기 위해 애썼던 삭개오라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예수가 누군지 보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으니, 이는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더라.

이 구절은 2가지로 읽힐 수 있다. 즉 삭개오 또는 예수의 체구가 작았다 는 것으로, 이 표현의 모호함은 어떻게 이 구절이 검열의 칼날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 설명해준다. 예수는 조그만 체구의 사나이였을까? 아무 도 확신할 수 없다.

겟세마네에서의 체포

예수의 체포는 겟세마네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장소는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저자들은 겟세마네가 “의의 문” (동문)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며, 예수는 이곳에서 성전의 두 개의 큰 기둥을 상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는 그의 체포 시간을 정밀하게 선택했습니다. 동문은 에스겔의 환상에 묘사된 것처럼 중요한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 “그때 주의 영이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향한 성소의 바깥문으로 돌아갔다. 그 문은 닫혀 있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문은 닫혀 있을 것이다. 열리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이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리로 들어가셨으므로 이 문은 닫혀 있어야 한다.’” (*에스겔 44:1-2*)

예수의 행동은 이러한 예언을 반영하며, 그의 메시아적 역할을 강화하고 유월절 동안 동문의 상징적 중요성을 완성했습니다.

새벽별의 중요성

그날 밤, 예수는 고대 이집트 전통과 쿰란 공동체의 신앙에서 새로운 왕의 도래를 상징하는 새벽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별의 출현은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예수가 한 것이다. 그는 해의 시작에 새로운 달이 뜬 밤 에 동문의 문지방까지 감히 가까이 가서 경배했다. 그는 자신을 ‘공의와 의 (mishpat과 tsedeq)를 행하라 는 에스겔이 준 임무를 맡기 위해 왕위에 오르 기를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왕자로 보았다. 그날 밤 내내 예수는 샛별이 뜨 기를 기다린다. 동쪽에서 뜨는 그 별은 고대 이집트의 새로운 왕의 도착을 예고한 바 있었으며, 쿨란인들의 신앙 속에서는 그들의 새로운 왕의 표시 였을 것이다. 사본 전체를 통해, 그리고 <민수기> 24: 17에서 발견되는 이 별 예언’ 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서) 일어 나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이것의 정확한 의미 를 알았지만 후의 (이방) 기독교도들은 이것을 그의 짧은 왕권의 순간보다 는 그의 탄생의 특징으로 혼동하게 된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 시록)의 저자는 예수를 다음과 같이 일컫는다.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샛별이라.

입문 의식

이 장은 *마가복음 14:51-52*에 나오는 신비로운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구절에서 한 청년이 세마포 옷만 걸친 채 예수를 따라가다가 잡히자 벌거벗고 도망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자들은 이 구절이 예수의 체포 직전 일어난 비밀 입문 의식을 언급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프리메이슨 의식을 연상시키는 의식일 수 있으며, 당국에 의해 중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한 청년이 세마포만 두른 채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이 그를 붙잡으니, 그는 세마포를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 (*마가복음 14:51-52*)

이 해석은 예수의 체포를 의식과 상징의 맥락에서 해석하며, 그의 십자가형에 이르는 사건들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내러티브에 도전하며, 프리메이슨 이론, 고대 예언, 숨겨진 의식과 결합하여 사건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저자들은 예수의 외모, 행동 및 체포의 정황들이 신학적 의도를 맞추기 위해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경되었거나 은폐되었으며, 고대 전통과 상징을 깊이 이해함으로써만 해독될 수 있는 단서들이 남겨졌다고 주장합니다.

재판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예수의 체포와 처형 과정을 상세히 분석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기독교적 해석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저자들은 예수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정치적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하며, 그에 따라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산헤드린과 빌라도의 두려움

예수와 그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권력가들에게 위협으로 간주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종교적 영향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로마와 유대의 권력을 뒤집으려는 메시아 운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유대의 최고 법정)은 야고보의 성전 권리를 두려워했으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격분할 경우 일어날 문제를 걱정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유대인들이 격분하면 놀라울 정도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잘 훈련된 군대가 그를 보필하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들 대부분은 이틀 행군 거리에 있는 황제에게 가 있었다. 이는 어떤 반란도 3일 내에 진압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가 성벽에서 교수형 당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보가 아니었던 빌 라도는 모두를 만족시킬 계획을 짠다.

빌라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을 체포하고, 그 중 한 사람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와 야고보 중 한 사람을 풀어줄 것을 제안하며, 선택권을 군중에게 넘겼습니다.

예수와 야고보의 이름

저자들은 예수의 이름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Yahoshua,” 즉 ‘구세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야고보 또한 히브리어로 ‘J’acov’로 불리며 같은 구세주로 언급될 수 있었습니다. 저자들은 바라바(Barabbas)의 이름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며, 야고보가 제사장 메시아로서 이 칭호를 가질 자격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유월절 사면 전통의 허구성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전통은 나중에 교회가 만들어낸 완전한 조작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합니다. 실제로는 빌라도가 민감한 상황을 풀어나가기 위해 획책한 계략일 뿐이며, 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군중들은 야고보(바라바)를 선택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던 예수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채찍질당한 후 가시면류관을 쓰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붙은 십자가 위에 못 박히게 됩니다. 저자들은 예수가 고문을 빨리 당하고 죽은 이유를 그의 신체적 특성에서 찾습니다. 예수가 현상수배 전단에 설명된 대로 꼽추였을 경우, 십자가형은 그의 기형적인 척추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며, 이는 그의 빠른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랍비 문서의 발견

저자들은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중요한 단서를 *토세프타 셰부오트(Tosefta Shebuot)*라는 랍비 문서에서 발견합니다. 이 문서는 십자가형을 둘러싼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빛을 비추어줍니다.

문서에서 언급된 두 제사장의 경주는 제사장 메시아로서의 경쟁을 상징하며,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당시 “제단에 거의 이르렀다”는 구절은 그의 운명을 암시합니다. 야고보의 연설에 따르면, 빌라도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손을 씻는 행위는 로마식이 아니라 쿰란/에세네파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서 는 서기 70년, 로마인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에서 살아남은 예루살렘 유대 인들의 기억의 기록으로, 참화 이전의 사건들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비기독교 전통에서 나온 것이므로, 조작되지 않은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서 1:4에서 우리는 십자가형을 둘러싸고 예수와 야고보 간에 일 어났던 일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주는 강력한 설명을 발견했다. 시작은 다 음과 같다.

형제지간인 2명의 제사장이 경사로 위로 막상막하로 달리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 앞서 제단4큐빗 이내에 이르렀다.
이 첫 문장은 제사장 메시아가 되기 위해 경주하는 모습을 언급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죽을 당시 거의 그곳에 이르렀었다.
‘그는 칼(희생제물을 죽일 때에 쓰는)을 들어 자신의 심장에 꽂았다.
홍미롭게도 다음 절은 하나님 앞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희생시킨 예수

십자가에 달린 자의 논쟁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지, 아니면 그 대신 다른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고 믿으며, *코란*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예수와 야고보가 모두 메시아로 불리며, 재판정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불렸음을 강조합니다. 한 명은 십자가에서 죽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가 바로 야고보라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와 야고보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들의 역할과 그들이 맞닥뜨린 정치적 상황을 재해석하는데 집중합니다. 저자들은 기존의 기독교적 해석에 도전하며, 예수의 죽음이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닌, 정치적 음모와 복잡한 사회적 요인이 얽힌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의 십자가형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우리는 야고보가 모인 추종자들에게 한 연설의 인용문이 십자가형의 시기의 야고보의 역할과 그의 형제에 대한 태도를 확인해주기에, 굉장히 중 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튼 이 글은 신약성서에서 누락되었고, 이는 우연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것 같다. 살펴보았듯, 예수가 죽은 뒤 교회에서는 바울의 영향하에 있던 베드로를 위해 야고보의 지위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계획적인 정책이 있었으니 말이다.

본디오 빌라도가 자신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손을 씻었다는 이야기는 이 문서가 야고보의 연설을 담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손을 씻는 행위는 로마식이 아 니라 쿰란/에세네파의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 했다기보다는 나중에 부가된 것이다. 즉 야고보가 언급하는 대로, 살인 후 에 결백의 증거로 적용되는 <신명기)의 정확한 구절에서 온다. 살인 전은 분명히 아닌 것이다. 일단 주검이 발견되면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기 위해 길이를 재고. 마을의 장로들은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맨 적이 없는 암소를 데려다가 머리를 쳐 죽인 다음. 그 몸뚱이 위에서 손을 셋으며 “우리의 손은 이 피를 흘리지 않았고 우리 눈은 그것을 보지도 않았다.”고 암송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 절은 주님께 “오. 주여, 주께서 구속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책임으로 탓 하지 마소서.”라고 간구한다.

살인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는 이 구약성서가 공관복음서 저자들의 마음 속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예로 마태가 27 : 24-25에 기록한 것을 보자.
빌라도가 자기로서는 아무것도 설득할 수 없고. 오히려 소요가 일어난 것 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고 하자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마태복음>과 <(신명기)를 비교해 보면 그유사성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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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않았고 우리의 눈도 그것을 보지 못하였나이 다.’ (<신명기> 21:7)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 (<마태복음> 27:24)

구약성서에서는 살인은 하지도. 보지도 않은 자가 결백을 주장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은 살인의 죄가 없으며 죄인은 그것을 본 유대 인들이라는 빌라도의 말을 본다. 이 구절을 누가 처음 썼던 간에 그는 예수 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 야고보가 한 말을 분명히 알고서는 모인 관중에게 부분적인 책임을 전가한다. 야고보는 그의 말이 어떻게 곧 기독교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신을 죽인’ 책임을 전체 유대 국가에 전가할지 알 리 없었다. 모인 관중이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저주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으로, 2천 년 동안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초래하게 된다.

토세프타 셰부오트의 야고보에 관한 사본은 그 운동에서 야고보의 역할과 십자가 처형 시기에 형제에 대한 그의 태도를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매 우 중요하다. 게다가 그것은 빌라도의 결백 주장 행위를 설명해준다. 신약 성서에서 야고보의 말씀이 누락된 것은 예수 와 필적하여 최고의 위치에 있던 야고보를 계획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였다.
이 랍비 문서를좀더 들여다보던 중 <미쉬나 소타 Mishnar Sotah)> 6:3 말씀을 보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전이 파괴되기 40년 전에 서쪽의 빛이 사라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주님의 제비는 언제나 왼손에서 생겨나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40년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연수였다. 하지만 또한 그저 예수가 죽임을 당한 뒤. 성전이 파괴되기까지의 기간에 관한 것 이기도 했다. 사라진 빛은 왕실의 색(붉은색)으로 표현되는 왕 메시아였고 왼손에 생기는 주님의 제비는 왼쪽 기둥 인 예수 대신 ‘오른쪽 기둥’ 야고 보를 택한(제비뽑기) 군중의 결정을 의미한다. 하늘이 붉게 물든다는 것은 야고보가 의의 스승으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죽은 형제의 권리를 계승하여 다윗 왕 자손의 새로운 지도자로 여겨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교환되었는지 대체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있어 왔으며. 심지어 이슬람교도들은 십자가 위에 있던 자가 예수가 아니었다고 믿는다. 코란 수라(성경의 장에 해당) 4: 157을 보자.
그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마리아의 아들, 알라의 사도 그리스도 예수를 죽였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를 죽이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따라서 이를 모르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의혹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따라야 할 유일한 추측은 확실히 그들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누군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믿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고 확신할까? 답은 놀랍게도 간단하다. 그들은 둘 다 옹기 때문이다. 즉 마리아의 두 아들이 합께 재판정에 섰으며,. 들 모두 구세주 또는 메시아라고 주장했고 따라서 둘 모두 예수’ 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 한 명은 십자가 위에서 죽고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죽지 않았던 자가 야고보. 바로 둘 종 더 낮았지만 평가는 더 높았던 자였다. 일부 사람들이 그가 십자가형을 교묘하게 피했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거짓을 내뿜는 자의 출현

이 장에서는 초대 교회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한 역사적 논란을 다룹니다. 주요 인물은 의인 야고보와 사울(후에 바울로 알려짐)입니다. 요약과 함께 주요 인용문을 포함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와 쿰란 공동체

예수의 죽음 이후, 의인 야고보는 쿰란으로 물러가 자신의 역할을 숙고했습니다. 그는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유일한 메시아로서, 강력한 지도자이자 순수하고 신앙심 깊은 의로운 삶을 지향했다고 전해집니다. 야고보의 순수성에 대한 엄격한 준수는 자신을 철저하게 깨끗하게 유지하며 세정식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위생과는 무관하며, 의식적인 물의 사용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사도행전> 12:17에서 확인됩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는 야고보가 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하게 하고, 주께서 어평게 자기를 감 옥에서 이끌어내셨는가를 설명하고 또 말하기를 “가서,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말해주라.” 하고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사울과 바울의 등장

장에서는 로마 총독에 의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유대인의 왕”의 처형으로 언급되면서 이후, 이스라엘 땅 전체와 그 외의 지역에서도 메시아 운동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합니다. 이 시점에서 남부 터키 지역 출신의 로마 시민 사울(후에 바울로 알려짐)이 등장합니다. 그의 부모는 바빌론 유수 후) 흩어진 유대인(디아스 포라)이었다. 사울은 유대인으로 성장했지만, 쿰란 공동체와 같은 순수한 야훼 추종자들의 문화와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그러한 일이 전혀 없었기에 명백한 난센스다.
그는 로마를 대신해 야고보가 이끄는 나사렛파와 같은 유대의 독립 움직임을 억제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보입니다. 논의했듯. 남부 이라크의 만데안인들은 유다 땅에서 쫓겨난 나세렛인들이며, 이주 시기는 정확히 서기 37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을 박해했던 남자가 사울(일명 바울) 그 자신이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저자들은 사울이 다마섹으로 가는 길에서 눈이 멀게 된 사건(약 60 CE)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그의 박해자에서 나사렛 운동의 일원으로의 전환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17년 동안 유대 자유 운동을 박해했음이 분명하다. (매우 의심스러워 보이지만) 비록 거기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도, 사울이 다마섹에서 체포활동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추측이다. 학자들은 그의 목적지를 다마스쿠스, 즉 다마섹’ 으로 불리는 쿰란이었다고 여기기도 한다.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나사렛인 운동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의 상징이었다.

사울의 목적지가 사실은 쿰란이었다는 사실은 <사도행전> 22: 14가 확인해주고 있는데, 거 기에서 그는 야고보에 대한 확실한 호칭인 의로운 분’에게 소개될 것이라 는 말을 듣는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 시고 의로운 분을 보게 하시며,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음성을 듣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아고보의 입을 통해 직접 나사렛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동떨어진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이었던 그는 자신이 들은 메시지를 이해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의 죽음 이야기와 “희생양 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헬레니즘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곳에 잠깐 동안 머물렀던 바울은 쿰란의 비밀을 전수받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알고 있듯.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3년의 훈련과 검증의 기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이 신참과 야고보와의 관계는 급속하게 팽팽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쿰란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야고보와의 관계에서 긴장감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바울의 교리와 갈등

장에서는 바울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식으로 다룹니다. 저자들은 바울이 야고보와 나사렛파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대신 유대교의 신념과 헬레니즘적 아이디어를 혼합하여 새로운 종교, 즉 기독교를 창안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바울과 야고보 사이에 큰 긴장을 초래했고,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한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고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고 주장됩니다. 그는 자신이 쿰란의 비밀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추종자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와 사도들에 대해 비판적이며, 갈라디아서 1:8-9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거짓말쟁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유대교의 율법을 경시하고 헬레니즘적인 신화를 퍼뜨렸다고 지적됩니다.

바울은 17년 동안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유대인들을 색출해냈으며 한 번도 세례요한과 예수, 야고보의 주장을 따른 적이 없었다. 대신 그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번역인 기독교 라는 그리스 이름을 붙인 새로운 종교 를 창안한다. 그러고는 알지도 못하는 예수를 그리스도’ 라고 부르고 추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사렛인들의 용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들과 그 신이자 인간이 행한 기적을 직역했던 최초의 인물이 된다. 아울러 시몬 베드로를 지지한다는 그의 주장은 전체 거짓말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시몬 베드로는 나사렛파의 주도권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권위에도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강하게 경고하노니, 예루살렘으로부터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의 추천장을 가져오지 않는 자는 절대로 스승으로 믿지 말지어다.
휴 숀필드Hugh Schonfield: <놀라운 기독교인들 Those Incredible Christians>

쿰란 문서에 대한 로버트 아이젠만의 해석을 읽은 뒤 야고보. 즉 의의 스승과 다툰 거짓을 내뿜는 자 로서의 바울의 정체에 관한 우리의 어떤 의심도 사라졌다. 내뿜는 자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쿰란식 으로 바울과 관련된 세례식을 가리킨다. 하박국 페세르(주석)는 이 인물이 ‘거짓의 물을 이스라엘에 쏟아내’ 고. ‘그들을 길이 없는 황무지로 이끈다’고 확실히 보여준다. 길 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율법의 이정표를 없애는 것’과 관련된다.

우리는 ‘거짓말쟁이’ 와 야고보의 적이 바로 바울이었다고 믿는다. 바리새파로서의 교육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거짓말한 남자가 유대인의 율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으며. 할례받지 않은 자들을 받아들였다. 바율은 중요한 사람’으로. 그리고 ‘기둥들’ 로 여겨지는 의심할 나위 없는 명성을 지닌 적들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은 그들에 종속되지 않는다 고 선언한다. 그는 그들을 사탄의 종. ‘거짓 사도’ 그리고 가짜 형제 로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갈라디아 신자들이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는 데에 놀란 그는 말한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1:8-) 또, 그는 야고보의 사자들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하는 거짓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갈라디아서> 2:4)

하이암 맥코비와 같은 일부 주석자들은, 바울이 바리새파 랍비가 아니라 모호한 과거를 가진 단순한 협잡꾼이었을 뿐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바울은 어떠한 바리새파 배경이나 교육도 받지 않았으며, 타루수스에서 이방 부모로부터 태어나 유대교로 개종한 자였다.: 성인이 되어 예루살렘에 와서 대제사장의 시동이 된 그는 출세의 꿈이 깨어지자 대제사장과 갈라져 자신의 새로운 종교를 세운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관해 2가지의 반대되는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의 형제 야고보의 ‘거짓 가르침과. 유대교의 핵심신앙을 무시하는 자신의 헬레니즘적 신화 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고린도전서> 9:20-25에서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 교회를 무시하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며, 스스로를 사악한 거짓말쟁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에게 율법 없 는것같이 된 것은 ~~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그러프 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이 공개적인 율법의 경시와 자신의 낯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말하고 하겠다는 의지는 왜 야고보와 쿰란 공동체가 바울을 ‘거짓을 내뿜는 자’ 라고 불렀는지 잘 보여준다. <로마서> 10:12와 그 밖의 말씀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그리스인 간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 공동체를 설립할 것 을 희망한다. 이것은 정확히 헤롯왕 가족과 그 지지자들의 야망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고의적으로 다윗 혈통을 몰아내고 그들의 왕/메시아를 죽인 점령 세력을 합법으로 정당화했다. 그는 설득한다. 너희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왜나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며 권세자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기 때문이다.’ (< 롬> 13:1)

바율은 확실히 로마 시민권을 받을 만했다.

이, 종교를 가로챈 자는 엄청난 미움과 두려움을 야기했었음이 틀림없다. 그가 예루살렘의 헤롯 권력계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사도행 전)에서 분명히 보이며. 바울은 야고보에 대한 음모자로 드러난다. 위험에 처한 야고보는 바울이 자신에게 행한 것과 같은 중상을 지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을 위해 계속해서 쿰란 공동체의 비밀들’ 을 훔쳤다. <고린도전서>3:9-10에서 바울은 자신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건축물’로 설명하면서. 하박국 페세르의 건축물 과 터 닦기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신을 건축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통잇돌 로서 언급한다. 물론 거기에는 예수가 사용했고. 프리메이슨에게 전해져 내려온 모든 나사렛인들의 용어가 들어 있다.

앞서 우리는 확실한 메시아. 의인 야고보에 대한 바울의 적대와.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라는 거짓 주장으로 인해 생긴 쿰란 나사렛인들 의 분노에 대해 다루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은 가말리엘(위대한 율법학자) 문하에서 바리새파로서 교육받았다는 거짓 주장으로 지도력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정치적인 본능으로 알았다. 바울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는 <사도행전> 21장에 잘 나와 있다. 여기에서 자신의 권위를 잘못 판단한 바울은 성전에 들어가지만, 거기 모인 군중들에 의해 끌어내져 죽임을 당할 뻔한다. 군중들은 그가 에베소에 있었을 때에 언약 공동체와 율법에 반해 가르친 자 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온 예루살렘이 요란했다’. 바울에게는 다행히도 성전 안뜰에 인접한 안토니오 요새로부터 수백의 로마 군대가 왔다고 성서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소요는 규모가 컸었음에 분명하다.

바울의 반응과 역사적 맥락

바울은 자신의 교리에 대한 반발에 직면하며, 에베소의 원형극장에서 연설을 했지만, 그의 교훈은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또한 예루살렘에서 심각한 소요에 직면하며, 로마 군대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장에서는 바울이 “거짓말쟁이”와 “적”으로 간주된 이유를 설명하며, 바울의 율법과 할례에 대한 가르침이 야고보가 지키고 있던 유대 전통과 직접적으로 충돌했음을 지적합니다. 다양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바울이 자신이 사용하는 전술을 1 Corinthians 9:20-25에서 인정한 점도 언급합니다.

그 당시 에베소는 이스라엘 밖에 있던 가장 큰 유대 공동체 중의 하나를 포함하여 대도시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대인들처럼 많은 자들이 테라페우타이Therapeutai파, 즉 쿰란의 에세네파와 긴밀하게 연결된 치료자들의 종파였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의학의 상징이 된 테라페우타이의 표시. 뱀과 막대를 찾았다. 이 고도로 지적이며 박식했던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어리석음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고, 그 자칭 설교자는 원형극장에서 보이는 메마른 언덕 꼭대기의 작은 건물에 감금된다.

야고보의 순교

마지막으로 장은 야고보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루며,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전에서 떨어져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이 사건은 프리메이슨에서 전설적인 건축가인 히람 아비프의 죽음과 비교되며, 이들의 운명과 성전과의 상징적 연결이 논의됩니다.

서기 62년,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공격받고 순교했습니다. <야고보의 두 번째 계시록>에 따르면, 야고보는 성전 기둥 옆에서 던져졌고, 이후 돌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성전과의 관련성을 보여주며, 예수의 제자들 간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야고보의 순교는 최초의 성전의 건축자, 즉 히람 아비프의 죽음과 유사하다고도 언급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소요에서 목숨을 건져 벗어났고. 반면 서기 62년에는 야고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공격받을 순서였다. 콘스탄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의 글은, 증인들이 야고보가 대제사장의 흉패와 주교관을 썼다고 주장했으며 예루살렘 최초의 주교로서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갈 권리를 주장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야고보가 형의 발자취를 따라 예고 없이 성전으로 들어갔다가 즉시 체포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신약성서는 그 암살의 자세한 면모를 제외시켰지만, 이교도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거부된 복음서인 <야고보의 두 번째 계시록>은 다음과 같이 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들은..그가 성전 기둥 옆, 중요한 모퉁잇돌 옆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를 그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기로 결정하여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그를 잡아 땅에 끌면서 <때렸다>. 또. 그의 몸을 뻗게 하고는 배 위에 돌을 놓았다. 그러고는 발을 그 위에 올려놓고 너는 죄를 지었다!” 고 말했다. 그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자 다시 그를 세워 땅을 파도록 하고는 안에 그를 세웠다. 배까지 흙을 덮은 뒤에 그들은 그에게 돌을 던졌다.;

메이슨과의 연관을 보여주는 야고보의 죽음 관련 이야기가 있다. 2세기 기독교의 대가였던 헤게십푸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래서 그들은 의인 야고보를 아래로 던졌고 그가 죽지 않자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무률을 끓고 말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저들을 용서해주시읍소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 니다.” 그들이 그렇게 돌을 던지는 동안 예레미아 선지자가 인정한 레갑의 아들들인 제사장들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그만하라! 의인이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직공이었던 그들 중 하나가 그 의인의 머리를 자신의 곤봉으로 세게 쳐서 죽였다.’

성전과의 관련은 죽음 후에도 지속되었다. 야고보의 무덤은 오늘날 성 전 동쪽 문에서 곧바로 올라가면 있는. 기드론 계곡에 있는 것으로 믿겨진다. 높은 암반 면에서 깎인 그 무텀은 한 쌍의 장려한 기둥을 입구로 하여. 여전히 거기에 서있다. 요세푸스는 야고보의 죽음으로 대단히 화가 난 예루살렘 거주자들이 비밀리에 아그립바 왕과 접축하여. 대제사장 아니누스의 사악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고 기록했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확실히 바라던것을 얻고. 아나누스는 물러나게 된다.

결론

이 서사는 바울을 초기 기독교 운동 내에서 분열을 초래한 인물로 묘사하며, 야고보의 순교와 예수의 원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난 기독교의 확산을 초래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이 장에서는 바울과 야고보 간의 갈등, 바울의 교리 창출, 그리고 야고보의 순교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쿰란의 비밀을 전수받지 못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창출한 반면, 야고보는 정통적인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 수호자로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은 초기 기독교 교리 형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을 드러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주제입니다.

유대인들의 보물

서기 66~79년의 유대 전쟁이 의인 야고보의 죽음으로 인한 긴장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요세푸스가 이를 확실히 보여준 것임을 알았다. 비록 원본 기록이 더 이상 존재하지는 않지만, 요세푸스의 의견에 혼란을 겪던 3세기 교부 오리겐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이를 알 수 있다. 오리겐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믿지는 않았지만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붕괴의 진정한 원인을 찾으면서, 예수의 박해가 그 파멸의 원인이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예언된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의지에 반하고 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 소위 그리스도의 형제였던 의인 야고보를, 비록 그가 철저한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였기에 이에 대한 복수로 유대인들이 이 일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사역이 단 1년에 불과했지만, 야고보는 20년 동안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가 더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의 형제로서 야고보의 지위와 영향력은 고대 기록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나, 가톨릭 교리에 의해 억압되어 일반인들과 성직자들조차 그의 정보를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기 66년에 발발한 전쟁은 유대인들 간의 폭력적인 충돌을 시작했다. 나중에 입장을 바꾸어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그의 이전 장교들을 쫓아가 잡던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원래는 갈릴리의 유대 사령관이었다. 처음 에는 유대인들이 선전하여 예루살렘으로 행군하던 시리아 군단을 물리치 지만, 그들은 로마 군대의 힘을 절대로 이겨낼 수 없었다.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 칼의 힘을 믿었던 나사렛인들은 젤롯당이라 불렸고, 그들이 서기 67년 11월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탈환한 것이 확실하다. 기살라의 요한이 이끌던 젤롯당은 로마와 평화를 원했던 성전의 많은 제사장들과 도시 지도자들을 색출했다.
그러한 생각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런 관점을 가진 자는 모두 즉시 죽음에 처해졌다. 하지만 로마 군대는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고. 가장 열럴했던 젤롯당에게조차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다. 서기 68년 봄. 그들은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전 보물들과 신성한 사본들, 그릇들과 십일조를 숨기기로 한다. 시기는 참으로 적절하여, 6월이 되자 로마인들이 여리고와 쿰란 거주지를 파괴한다. 2년 후에 예루살렘은 티투스 로마 형제에게 함락되고 젤롯당은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힌다. 마침내 나사렛인들의 비밀을 알 던 마지막 유대인들은 마사다 주민 전체가 로마인들에 항복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서 사라져갔다.

모세로부터 나사렛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비밀은 그 선지자가 명했듯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지성소 가까이 성전 기초 아래의 지하실에 보관되었 다. 다른 작품들은 쿰란을 둘러싼 언덕들의 동굴들을 비롯한 나라 주변의 적어도 다섯 지점에 숨겨졌다. 그런 동굴 등에서 발견된 사본들 중의 하나가 동판 두루마리다. 이것은 길이 8피트(약 2.5미터)에 넓이 1피트(약 30센티 미터)로 양쪽에서 가운데로 말려 2개의 두루마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지 금은 가운데가 나뉘어 2개의 판이 되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완전히 녹슬 어 읽을수 없었다. 하지만 1955년 맨체스터 공대에 의해 조각으로 잘려 재 구성된다.

젤롯당은 로마 군대의 침입에 맞서 성전 보물과 신성한 사본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이 시점에서 성전의 보물들은 숨겨졌고, 이후 1955년 맨체스터 공대에서 동판 두루마리가 재구성되었다. 동판 두루마리는 길이 8피트, 넓이 1피트로, 발견 당시에는 완전히 부식되어 읽을 수 없었다.

존 알레그로는 동판 두루마리의 내용이 명확해지자 큰 흥분을 느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명료해지고 전체 문서의 중요성이 확연해지면서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조각들이 제거되어 깨끗해질 때까지 그 명확성을 믿지 않기로 했다.”

알레그로는 동판 두루마리가 성전 제단 아래에 저장되어 있었으며, 그 목록에는 금과 은의 신성한 보물, 제물, 다양한 신성한 그릇들과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판 두루마리는 엄청난 양의 금과 은, 귀중한 물건들과 성전 안에 있는 적어도 스물네 편의 사본들을 열거하고 있으며, 다른 저장소 예순한 곳을 가리킨다.”

존 알레그로의 동판 두루마리 해석은 성전 자체에 적어도 하나의 다른사본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켰다.
북쪽으로 구멍이 나고 그 입구가 막힌 북쪽에 인접한 구덩이shith 속에 이 문서의 사본이 묻혀 있는데,. 거기에는 각각에 대한 설명과 두께, 그리고 각각의 목록과 다른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입구에 동쪽을 향한 2개의 문의 아치를 지탱하는 두 기둥들의 안쪽 방에는 3큐빗 깊이에 주전자가 숨겨져 있고, 그 안에 사본 하나와 그 아래에 42달란트가 있다.
동쪽 문 앞 19큐빗의 수조에는 그릇들이 있고 그 안에는 10달란트가 있다. (?>의 안뜰에는 ..남쪽 구석 아래 9큐빛에 십일조를 위한 금과 은그롯들 및 물 뿌리는 수반, 컵들. 제사용 주발들, 신주 그릇들이 총 육백아흡 기가 있다.
MLHM 안의 구덩이<?> 북쪽에는 십일조 그롯들과 의복들이 있다. 그입구 는 동쪽 구석 아래다
지성소 지하 복도 내에서 남쪽을 향해 있는 복도에는 16큐빗 깊이의 회반죽 안에 22달란트가 묻혀 있다.
성전 분수 입구에는 십일조를 위한 은그릇들과 금그롯들 및 총 600달란트의 돈이 있다.’

최초의 성전 기사단이 서기 1119년에 이르러 일부 사본들을 발견했다는 것을 밝혀낸 우리는 지금, 왜 그들이 8년을 더 성전 폐허 아래를 파내는데에 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기사단이 갑자기 부흥하여 명예와 돈을 얻게 된 것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다!

유대인들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 예수와 나사렛인들의 가르침은 ‘바울교’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기독교에 의해 대체되었고, 기독교 신학이 예수의 남아 있는 가르침들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는 사실은 그 교리가 휠씬 후에 추가된 것 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울이 만든 교리들은 예수의 평등주의적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바울의 비유대적 위계 종교로 인해 예수의 혁명적인 민주주의적 가르침은 묻히고 잊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 장에서는 사본들이 어떻게 묻혔는지와 그 내용에 대한 가설을 발전시키며, 성전 아래 지성소의 비밀 사본을 숨기라는 지시와 에세네파의 설명을 언급했다. 그러나 여전히 천년 이상의 간극이 남아 있으며, 이를 메우기 위해 로열 아치와 메이슨 의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구는 로마가 성전을 파괴한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유물에 대한 조사와 그와 관련된 켈트 교회의 영향을 살펴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Chapter 12: 결론

The Hiram Key**”의 12장에서는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됩니다. 이 장에서는 성서, 사해사본, 그리고 프리메이슨의 문서들을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주요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1. **예수의 생애와 사역**:
    • 예수Yehoshua Ben Joshph가 실질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단 1년으로 보이며, 그는 자신을 두 기둥의 상징으로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쿰란 공동체와 예루살렘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 예수는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기”와 같은 기적을 행했으며, “죄인들”, “매춘부들”, “취한 자들”, “창녀들” 같은 용어는 단순히 로마인들과 어울렸던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해석됩니다. 주기도문 또한 원래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2. **쿰란 공동체의 부활의식**:
    • 쿰란 공동체는 최고 등급의 입문자들에게 모방 부활의식을 사용했으며, 입문자들은 “산 자”로, 그 외의 사람들은 “죽은 자”로 언급되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이 이 부활의식을 자신들의 내부 모임의 입문 방법으로 사용한 예가 아나니아와 삽피라의 이야기입니다. 나사로의 이야기는 한 인물이 탈퇴 후 재가입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두 기둥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산 자의 부활의식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 3. **프리메이슨과의 관련성**:
    • 프리메이슨과의 관련성은 기둥의 이미지와 샛별에서 발견된 연결 고리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민수기 24:17에서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고, 홀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 두 명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초기 가설이 증명되었으며, Yahoshua ben Joseph은 유대인의 왕이었고 그의 형제 야고보 Yacob ven Joseph는 예수 바라바로 언급되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야고보가 기독교도들에게 한 오래전에 사라진 연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후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거의 2천 년 동안이나 지속된 반유대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성삼위일체의 개념은 기독교가 비일신교적 종교임을 보여줍니다.
  • 4. **삼위일체와 기둥 패러다임**:
    • 성삼위일체의 기원은 기둥 패러다임에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는 샬롬 쐐기돌, 하나님의 아들은 ‘tsedeq’ 기둥, 유대인의 왕은 ‘mishpat’ 기둥으로 이해됩니다. 이 두 기둥은 땅과 하늘의 조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 5. **기독교의 기원과 프리메이슨의 역할**:
    • 기독교의 십자가 상징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구조가 아니라 구세주를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형태임이 밝혀졌습니다. 야고보가 착용한 주교의 복장 또한 테베의 창조신 아멘을 의미하는 상형문자입니다.
    • 쿰란이라는 이름조차도 두 기둥 위의 아치를 의미하며, 이 이미지는 공동체의 세계관의 핵심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기독교 교회의 시작은 예수와 관련이 없었으며, 바울이 이방인으로서 만들어낸 종교로 확인되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은 기둥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유대교적인 삼위일체 개념을 창안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가 ‘거짓말을 내뿜는 자’ 로서 사해사본에 기록된 인물이며, 나사렛 신앙을 가로채기 위해 야고보와 다툼을 벌였던 자라는 확신을 가졌다. 기둥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은 독특하고도 고도로 비유대교적인 성삼위일체 개념을 고안해냄으로써 유대교 사고를 해석하려고 했던 것이다.
  • 6. **사본의 보존과 발견**:
    • 종말이 도래했다고 믿던 쿰란의 나사렛인들이 가장 비밀스러운 사본을 지성소에 가까운 성전 기초 아래의 지하실에 숨겼으며, 이후 전쟁으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사망하거나 도망쳤습니다. 묻힌 사본들은 기사단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잊혀졌습니다.
  • 이 장은 기독교와 프리메이슨의 연결, 그리고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어떻게 교리와 상징으로 변형되었는지를 재조명하며, 기독교의 시작과 기독교적 교리의 형성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Chapter 13: 결론

  • 켈트 교회와 로마 교회의 차이**:
    • 켈트 교회는 로마 교회와는 상당히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의 신성과 같은 핵심 교리들을 거부했습니다. 비록 켈트 교회는 17세기 중반에 로마 교회에 의해 강제로 소멸되었지만, 그 사고방식의 많은 부분이 저류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성전 기사단이 스코틀랜드에 도착했을 때, 스코틀랜드는 나사렛적 사고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프리메이슨과 로열 아치의 발견**:
    • 프리메이슨단의 로열 아치 등급의 원래 의식에 대한 발견은 사본 발굴에 관한 전체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왜 이러한 사건들이 혜롯 성전이 아닌 스룹바벨의 성전 터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명되었는지입니다. 저자들은 이 설명이 12세기 초반에 성전 기사단이 발견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쐐기돌과 궁형 천장으로 된 아치는 로마 시대에 발명된 것들입니다.
    • 로열 아치 등급의 기록판 위에는 성전 발굴과 사본들이 묻혀 있던 둥근 천장 회랑의 배치가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에는 성전 폐허와 예루살렘이 나타납니다.
  • 메이슨 전설과 성전 기사단**:
    • 연구자들은 메이슨 전설이 어떻게 위그 드 파엥이 이끄는 최초의 성전 기사단의 결사단 창단과 관련된 사본 발견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전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예루살렘>이 조프리 드 생 오메르가 생 오메르에 있는 성모 챕터의 람베르에게 가져간 두루마리들 중 하나의 모사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 이 그림 속에는 메이슨 직각자와 컴퍼스가 노골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새로운 예루살렘의 두 중심 기둥으로서의 야고보의 존재는 이전의 유추들을 확인해줍니다.

이 장에서는 켈트 교회의 독특한 교리와 그 교리가 성전 기사단의 도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며, 프리메이슨의 로열 아치 등급과 관련된 중요한 발견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메이슨 전설과 관련된 사본 발견의 의미와 그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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