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ram Key: Pharaohs, Freemasonry, and the Discovery of the Secret Scrolls of Jesus”는 프리메이슨리, 고대 이집트, 기독교 역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장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인 로버트 로마스(Robert Lomas)와 크리스토퍼 나이트(Christopher Knight)는 이 책에서 프리메이슨리의 기원을 추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스러운 측면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재해석하며, 기존 역사와 종교적 관념에 도전하는 내용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이 책은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역사적, 종교적 탐구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 Robert Lomas – Wikipedia
- Christopher Knight (author) – Wikipedia
- The Hiram Key – Wikipedia
- John J. Robinson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Singapore Masonic Library – Ars Quatuor Coronatorum
- Peake’s Commentary on the Bible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윌리엄 F. 올브라이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Delaforge, Gaetan The Templar Tradition In The Age Of Aquarius Threshold Books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 The Sign and the Seal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 일레인 페이절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Sigmund Mowinckel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우주, 혼돈 그리고 다가올 세상 (yale.edu)
- 조지 웨슬리 뷰캐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The Dead Sea Scrolls Deception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The Dead Sea Scrolls Deception : Michael Baigent , Richard Leigh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 EISENMAN WISE – The Dead Sea Scrolls Uncovered : Robert H. Eisenman, Michael Wise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 Robert Eisenman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Secret Gospel of Mark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Morton Smith’s Discovery of The Secret Gospel – Yale University Press
- 이드리스 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229821480 Arkon Daraul Idries Shah A History Of Secret Societies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서문
서문에서는 저자들이 프리메이슨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현재 정규 로지 내에 거의 500만 명이나 되는 남성 회원들을 거느린 세계에서 가장 큰 조직, 프리메이슨단의 기원을 찾기 위한 사적 인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프리메이슨리의 중심 인물인 히람 아비프(Hiram Abiff)의 이야기를 탐구하면서, 이 인물이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저자들은 히람 아비프의 존재가 서구 역사와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하며, 고대 이집트의 왕 즉위식과 부활 의식이 현대 프리메이슨 의식의 기원이라고 밝혀냅니다.
저자들은 서구 사회가 고대의 비밀스러운 철학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이 철학이 지난 3천 년 동안 중요한 순간마다 부각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의 비밀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서양 역사와 종교에 대한 기존 이해에 도전하는 내용을 예고합니다.
Chapter 1_프리메이슨의 사라진 비밀
결사단의 정체
Chapter 1의 첫 번째 부분인 “결사단의 정체”에서는 프리메이슨 단체의 역사와 대중의 인식에 대한 논의가 전개됩니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의혹
프리메이슨은 19세기부터 대중의 의혹과 추측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의혹은 21세기에도 여전합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는 프리메이슨이 상위 중산층과 귀족 계급의 특권적인 조직으로 인식되었고, 이로 인해 대중은 프리메이슨을 불신하며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프리메이슨 단체가 다양한 계층의 남성들에게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엘리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리메이슨의 사회적 역할과 내부의 모호성
프리메이슨 단원들에게는 이 조직이 주로 사회적 모임이자 전통적인 의식의 반복으로 인식됩니다. 의식은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지만, 그 상징적 의미나 역사는 단원들조차 명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프리메이슨의 의식은 외부인들에게는 더욱 신비롭고 모호하게 다가옵니다.
외부의 비판과 방어
외부인들은 프리메이슨을 자본가들의 특권 조직이자 부패의 온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폭로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프리메이슨 내부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무시하지 않고, 조직의 선행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을 방어합니다. 그들은 프리메이슨이 사회적 책임감을 높이고, 많은 자선을 베풀며,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합니다.
프리메이슨의 기원과 비밀
프리메이슨의 진정한 기원과 비밀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이로 인해 조직의 유용성과 목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언급되는 ‘진정한 비밀’은 아직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대체된 비밀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의 역사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것처럼 보이지만, 영국 연합 그랜드 로지조차도 그 기원을 명확히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 갇힌 불쌍한 입문자
프리메이슨 입문의식은 여러 상징과 절차로 구성된 복잡한 과정입니다. 이 의식은 신비와 상징을 통해 입문자가 프리메이슨의 철학과 가치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프리메이슨단에 들어오기 위해 우리는, 적어도 250년 동안 모든 입단자들이 경험해 온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그 일환으로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으로서 프리메이슨의 어떠한 비밀도 외부세계에 누설하지 않을 것과, 우리가 이 책에 기록한 정보는 일부 메이슨들에 의해 비밀의 폭로로 여겨질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서약이 필요했다. 하지만 영국 연합 그랜드 로지는 결사단의 비밀은 단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가짜로 프리메이슨인 척할 수는 없다. 수많은 절차를 담고 있는 의식들은 우리 연구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물론 의식에 사용되는 글의 일부는 암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이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놓지 않았기에. 우리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셈이다. 어떠한 경우든, 우리는 이 비밀들이 우리의 도덕적, 시민적, 또는 종교적 존재로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 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비밀 엄수에 동의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서약 때문에 우리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들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이는 이 자유들을 침해하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1. 사전 준비
- 인터뷰 및 준비 과정: 입문자는 의식에 앞서 프리메이슨 로지의 전 마스터들과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입문자의 동기와 자격을 확인합니다.
- 신앙 확인: 입문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받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해야 입문 절차가 시작됩니다.
- 그때부터 모든 일은 진행되어, 지금 문지기 한 명이 칼자루로 신전으로 향하는 커다란 문을 치면서 나를 들여보내도 되는지 알아보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 복장 준비: 입문자는 특별한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복장은 입문자가 세속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의식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 준비됩니다. 복장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됩니다:
- 입문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립니다. 헐렁한 흰 바지와 웃옷을 입고, 한 짝의 슬리퍼를 착용합니다. 왼쪽 바짓단은 무릎까지 걷어 올려지고, 왼쪽 가슴은 맨살이 드러나도록 옷이 당겨집니다. 목에는 교수형 올가미가 걸려 등 뒤로 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목에 올가미를 맨 이 단정치 못한 웃차림이 중세 이교도들이 종교재판을 받을 때에 입던 방식 그대로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 금속 제거: 입문자의 몸에서 모든 금속(시계, 반지 등)이 제거됩니다. 이는 물질적 소유물과 세속적 가치를 초월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입문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립니다. 헐렁한 흰 바지와 웃옷을 입고, 한 짝의 슬리퍼를 착용합니다. 왼쪽 바짓단은 무릎까지 걷어 올려지고, 왼쪽 가슴은 맨살이 드러나도록 옷이 당겨집니다. 목에는 교수형 올가미가 걸려 등 뒤로 늘어져 있습니다.
2. 의식의 시작
- 눈가리개 착용: 입문자는 눈이 가려진 상태로 신전으로 인도됩니다. 이로 인해 입문자는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 성전 입장: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 문지기가 신전의 문을 칼로 두드리며 입문자의 입장을 허락받습니다. 허가가 나면 입문자는 성전으로 인도됩니다.
- 신체적 감각 테스트: 입문자의 가슴 위에 칼날과 같은 차가운 물체가 닿습니다. 이때 입문자는 “네”라고 대답하며, “이제 네게 알려줄 비밀을 어느 것 하나라도 누설하면 이와 같이 너의 양심이 찔리며 곧바로 죽음에 이를 것이다.” 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 기본 질문: 워십풀 마스터가 입문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 “자유롭지 못하고 성숙한 나이에 이르지 못한 자는 메이슨이 될 수 없기에 네게 묻노니, 너는 자유로운 인간이며 21세가 넘었는가?”
- “너는 친구가 부적절하게 요청하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돈이나 다른 어떤 동기에 지배당하지 않으며, 프리메이슨의 비밀과 특권의 입문자로서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바칠 것을 명예를 걸고 선언하는가?”
- “나아가 너는 우리 결사단에 대한 긍정적인 선입견과 지식에 대한 욕구, 너 자신이 동료들에게 더 봉사고자 하는 진실된 바람으로부터 이러한 특권들을 원하는가?”
- 올바른 대답을 요구: 입문자는 “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 내 가슴을 꾹 누르고 있던 칼은 사라졌지만(그때는 몰랐다) 올가미는 여전히 내 목에 둘려 있었다. 오른편에 있는 남자가 내게 무릎을 꿇으라고 속삭였고 우주의 최고 통치자(단일 신 신앙을 가진 모든 단원들에게 적용되는 신의 중립적인 표현)의 축복을 구하는 간단한 기도가 올려졌다.
3. 어둠 속의 순례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를 붙잡아주었던 자가 나를 성전 주변으로 안내하며 ‘어둠 속에 같힌 불쌍한 입문자’ 로 나를 소개하기 위해 세 번 멈추어 섰다.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신전 바닥의 중앙에는 흑백의 칸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쪽 끝에는 워십풀 마스터의 대좌가 있었고 남쪽에는 주니어 워든(감독관). 그리고 서쪽에는 시니어 워든의 좀 더 작은 대좌들이 있었다.
4. 빛의 수여
세 바퀴를 돈 뒤 여전히 눈이 가려진 채 워십풀 마스터의 대좌에 이르자 그가 물었다.
“어둠에 갇히게 되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내 귀에 답이 속삭여졌다.
“빛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다시 주어라.”
뒤에서 누군가 내 눈가리개를 풀어주었고, 눈이 빛에 적응해감에 따라 나는 내가 워십풀 마스터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빛의 상징: 입문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적 물건들, 즉 신성한 율법의 책(기독교인의 경우 성경), 직각자, 컴퍼스를 보게 됩니다. 이는 프리메이슨의 핵심 가치와 원칙을 상징합니다.
5. 도제 메이슨으로 인정
워십풀 마스터는 이제 입문자가 ‘도제 프리메이슨’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프리메이슨의 첫 번째 등급입니다. 이는 이후 두 가지 추가 등급(펠로크래프트와 마스터 메이슨)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6. 교육과 상징적 설명
- 비밀 신호와 악수법: 첫 번째 등급의 비밀 신호, 악수법, 암호가 설명됩니다.
- 기둥의 의미: 솔로몬 왕 성전 현관 통로에 서 있는 왼쪽 기둥이 프리메이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오른편과 왼편 기둥 모두 로지 뒤편에 다시 세워져 있었으며, 그 사이에 워십풀 마스터의 자리가 있었다. 보아스로 불리는 왼편 기둥은 이스라엘 다윗 왕의 증조할아버지인 보아스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 에이프런 수여:
신전 여기저기를 둘러본 뒤 나는 지금 막 얻게 된 신분을 상징하는 흰색 송아지 가죽 에이프런을 선물받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이는 스페인의 황금 양털 기사단이나 로마의 독수리 기사단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프랑스의 별 기사단이나 영국의 가터 기사단(가터 기사단은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14세기 중반 창설한 근위기사단으로, 이에 자극받아 프랑스에서는 별 기사단, 스페인에는 황금 양모 기사단 등이 창설됨.), 또는 현존하는 그 어떤 기사단보다 영예로운 순결과 우정의 기장이 될 것이다…..”
7. 의식의 종료
- 도덕적 훈계: 의식의 전 과정을 통해 다양한 도덕적, 사회적 덕목들이 건축적 비유들로 훈계되었는데. 그중 석공의 연장들은 자아 개발의 방법들로 비유되었다.
- 시험 문제: 입문자는 다음 등급인 펠로크래프트 프리메이슨으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외워야 하는 시험 문제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질문: 프리메이슨은 무엇인가?
답: 비유로 가려지고 상징으로 그려지는 특별한 도덕체계입니다. - 질문: 프리메이슨이 토대로 하는 3가지 위대한 원칙들은 무엇인가?
답: 형제애와 구원 그리고 진리입니다. - 어떤 지원자에게나 첫 번째 원칙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음 두 원칙들은 이해하기 조금 힘들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며, 어떤 진리란 말인가?
- 질문: 프리메이슨은 무엇인가?
- 축하와 환영: 의식이 끝나면 입문자를 위한 축하연이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입문자는 워십풀 마스터의 왼편에 앉아, 로지의 프리메이슨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축하와 건배를 나눕니다.
자연과 과학의 감추어진 비밀들
‘펠로크래프트 프리메이슨’ 등급을 위한 제2등급 의식은 입문자가 도제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의식은 자연과 과학의 감추어진 비밀들을 탐구할 자격을 부여하며, 프리메이슨의 상징과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 의식의 주요 순서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사전 준비
- 에이프런 착용: 입문자는 흰 송아지 가죽 에이프런을 착용합니다. 이 에이프런은 진정한 순결과 비천한 처지를 상징하며, 입문자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 질문 테스트: 이전 의식에서 배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외우고 암송하는 시험을 치릅니다. 의미도 모르는 말을 그대로 암송하는 이 능력 시험을 간신히 끝마친 나는 잠시 성전을 떠나 ‘통과 의식’ 을 잘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다.
2. 성전에 재입장
- 복장 변화: 입문자는 입문식 때와 같은 복장을 하고 성전에 다시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왼쪽 다리와 오른쪽 가슴이 노출됩니다.
- 부제의 인도: 부제副祭들이 나를 성전 여기저기로 인도하는 동안 새로운 암호들과 신호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손을 드는 자세도 있었다. 이는 ‘여호수아가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주主의 전쟁을 치르며 적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태양이 그 자리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 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 야긴 기둥: 입문자는 솔로몬 왕 성전의 현관 통로 오른편에 위치한 ‘야긴’ 기둥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이 기둥은 예루살렘 성전의 이 부분 헌당을 보좌했던 제사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프리메이슨 연구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 보아스와 야긴의 상징: 두 기둥, 보아스는 ‘힘, 또는 그에게 능력이 있도다’ 를 의미하고 야긴은 ‘설립, 또는 그가 세우신다’ 인데, 합쳐지면 ‘안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3. 의식의 종료 및 축하
- 탐구 자격 부여: 제2등급 의식이 끝난 후, 입문자는 자연과 과학의 감추어진 비밀들을 연구할 자격을 얻습니다. 이는 프리메이슨이 단순한 도덕적 체계를 넘어, 자연과학과 지식을 탐구하는 조직임을 나타냅니다.
- 만찬과 축하: 의식이 끝나면, 다른 형제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담소와 노래를 즐기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 과정은 형제애를 강화하고, 입문자의 새로운 등급을 축하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한줄기 빛
‘마스터 메이슨’ 등급으로의 승격은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간주되며, 이 과정은 깊은 상징성과 엄숙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의식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도덕적 완성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이전 등급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종합적으로 통합합니다. 다음은 마스터 메이슨 등급 의식의 순서와 내용을 자세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1. 사전 준비
- 에이프런 착용: 입문자는 펠로크래프트로서 2개의 푸른 장미꽃이 장식된 흰색 에이프런을 착용합니다. 이 에이프런은 순결과 지혜를 상징하며, 마스터 메이슨으로서의 새로운 신분과 책임을 나타냅니다.
- 질문과 답변: 이전 등급에서 배운 지식과 교리에 대한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이는 입문자의 학습과 이해도를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 역사적 언급: 테스트 중에 솔로몬 왕의 성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되며, 고대 메이슨 형제들이 고용주를 신뢰하며 급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언급은 신뢰와 청렴함의 가치를 재확인합니다.
문제들을 질문받고 대답하는 동안 나는 ‘우리의 오래전 형제들은 그 당시 고용주의 청렴함을 믿고 아무런 주저나 거리낌 없이 솔로몬 왕의 성전 가운데 방에서 급료를 받았다’ 는 사실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성서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솔로몬 성전의 중실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이 실수일 리는 없어 보이기에, 나는 그 질문들이 과거에는 형제들이 고용주들을 믿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이 단계에서 나는 또 성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명확히 성서적인 인용을 듣는데, 그것은 내가 최고 등급인 마스터 메이슨이 되면 위임받게 될 임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주가 말씀하시되, 나는 나의 이 집에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이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 오늘날 프리메이슨들에게는 생소한. 처음 우리가 그것을 들었을 때에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이 인용구는 나중에 정말 중요한 것임이 드러난다.
2. 성전 입장 및 의식 시작
- 어둠 속의 빛: 성전은 완전한 어둠에 잠겨 있으며, 동쪽에 위치한 워십풀 마스터 앞의 동쪽에서 단 하나의 촛불만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 설정은 무지와 혼돈 속에서 진리와 지혜를 찾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 극적인 분위기: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강조되며, 의식의 주제가 ‘죽음과 부활’임을 암시합니다.
- 이전 등급의 요약
- 도제 등급: 신과 이웃,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의무를 배우는 단계로서의 의미를 재확인합니다.
- 펠로크래프트 등급: 과학과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 창조주의 위대함을 깨닫는 단계로서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 마스터 메이슨 등급 소개: 우정과 동료애로 형제들을 묶고, 죽음과 부활의 상징을 통해 더 높은 지혜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 ‘형제들이여, 메이슨의 모든 등급은 진보적이며 시간과 인내, 근면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1등급에서 우리는 신과 이웃.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를 배웠다. 제2등급에서는 과학의 미스터리들에 참여하고 창조주의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그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알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체를 합친 제3등급은 비밀들로써 형제들을 우정과 동료애 안에 함께 묶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죽음의 암흑과 좀 더 밝은 빛의 전조로서의 무덤의 어둠을 암시하는데, 이 빛이 의로운 자들이 부활할 때에 비추면 어둠 속에 잠자던 망자들이 깨어나 비슷한 영과 재결합하며 불멸의 옷을입고…..’
- 기도문 낭독
- 인도와 보호 요청: 입문자가 시련과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 무사히 부활과 영원한 빛에 이르도록 신의 은총과 보호를 구하는 기도가 올려집니다.
- ‘……구하노니, 마스터 메이슨의 신비한 비밀들을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는 당신의 이 종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그가 시련의 순간에 어둠의 골짜기를 무사히 지나도록 보호해주시고 마침내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인내를 내려주소서.’
3. 히람 아비프의 전설 재현
워십풀 마스터가 말씀하셨다
‘….자연은 하나의 위대하고 쓸모 있는 교훈을 준다. 바로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연은 묵상을 통해 인생을 마치는 것을 준비하도록 가르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곡들을 통해 너를 이끌어 마침내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형제여, 이와 같은 것들이 제3등급 프리메이슨의 목적이니라. 이는 너로 하여금 그 끔찍한 주제를 생각토록 하고 올바르고 고결한 남자로서 죽는 것이 거짓과 불명예의 오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 위대한 진실들 중, 프리메이슨의 역사는 그랜드 마스터 히람 아비프의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때 이른 죽음에 관한 영광스러운 예를 보여준다. 그는 솔로몬 왕의 성전이 완공되기 직전에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자신이 우두머리 건축가였던 건축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의 죽음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나머지 석공들을 통솔하도록 임명된 동업 장인(펠로크래프트) 15명은 성전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마스터 메이슨의 진정한 비밀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폭력 등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그 비밀 들을 알아내기로 함께 모의한다. 자신들의 음모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 전날, 15명 중 12명이 그 계획을 취소했지만 나머지 고집 세고 극악한 3명은 자신들의 사악한 뜻을 꺾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마스터 히람 아비프가 매일 정오에 신에게 예배 드리기 위해 찾는 성전의 남쪽과 서쪽. 동쪽 출입문에서 각각 기다리기로 한다.
히람 아비프는 기도를 마치고 남문을 통해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이 악한들 중 하나가 무기로 쓸 만한 것을 찾다가 다림자를 들고 히람 아비프를 위협하며 마스터 메이슨의 진정한 비밀을 요구한다. 하지만 히람은 자신의 의무대로 그 비밀들은 세상에서 세 사람만이 알고 있으며 나머지 2명의 동의 없이는 폭로할 수도,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적격한 메이슨(석공)은 언젠가 그 비밀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에게는 자신에게 맡겨진 신성한 비밀을 누설하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던 악한은 우리 마스터의 이마를 내려치는데, 오른쪽 관자놀이를 맞은 히람의 꿋꿋한 태도에 놀란다. 하지만 심한 타격에 히람은 비틀거리며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쓰러진다….’
- 히람 아비프 역할: 입문자는 솔로몬 왕의 성전의 우두머리 건축가인 히람 아비프의 역할을 맡아 전설적인 이야기를 몸소 재현합니다.
- 음모와 배신: 15명의 펠로크래프트 중 3명이 마스터 메이슨의 진정한 비밀을 폭력으로라도 알아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 세 번의 공격과 상징적 죽음: 히람 아비프는 성전의 남쪽, 서쪽, 동쪽 출입문에서 차례로 세 악한과 대치하며, 각각의 장소에서 비밀을 누설하라는 요구를 거부합니다.
- 남문에서의 첫 번째 공격
- 무기: 다림자
- 공격 부위: 오른쪽 관자놀이
- 결과: 히람이 왼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짐
- 서문에서의 두 번째 공격
- 무기: 수준기
- 공격 부위: 왼쪽 관자놀이
- 결과: 히람이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짐
- 동문에서의 세 번째 공격과 죽음
- 무기: 돌망치
- 공격 부위: 이마 중앙
- 결과: 히람이 즉사
- 남문에서의 첫 번째 공격
- 의식의 재현 과정
- 신체적 동작과 지시: 입문자는 각 공격에 따라 무릎을 꿇고, 가벼운 타격을 느끼며 전설을 몸소 체험합니다.
- 상징적 죽음과 수의 덮음: 마지막 공격 후 입문자는 발이 땅에 붙은 상태에서 바닥에 누워지고 수의로 덮여집니다. 이는 죽음과 종결을 상징합니다.
4. 부활과 재생의 상징
‘여기 이 자리뿐만 아니라 최근에 의식에 참여한 형제들아, 우리의 형제가 자신에게 맡겨진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기보다는 히람 아비프라는 프리메이슨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역할을 해주었다. 아울러 나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대들도 이것을 명심하여 시련의 상황에 처했을 때에 기억하리라 믿는다. 주니어 워든 형제여, 우리의 마스터 역할을 한 자를 잡아 일으켜라.’
- 주니어 워든의 시도
- 결과: 손이 미끄러져 실패
- 시니어 워든의 시도
- 결과: 역시 실패
독수리 발톱 쥐기를 통한 부활
‘워든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노고가 헛수고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특별한 세 번째 방법이 남아 있는데, “사자의 발톱” 또는 “독수리 발톱” 쥐기라는 방법이다. 이는 손가락 끝으로 오른쪽 손목의 힘줄을 단단히 잡고 동료들이 몸의 다섯 군데를 받쳐준 상태에서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대들의 도움으로 내가지금 해 보이겠다.’
- 워십풀 마스터의 시도
- 손잡이: ‘사자의 발톱’ 또는 ‘독수리 발톱’ 그립
- 동료들의 지원: 몸의 다섯 부분을 받쳐줌
- 결과: 성공적으로 입문자를 일으켜 세움
- 비밀 단어 전수: 일으켜진 후 워십풀 마스터가 입문자의 귀에 두 개의 비밀 단어를 속삭입니다. 이 단어들은 마스터 메이슨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5. 상징들의 해석과 묵상
‘자, 내 사랑하는 형제여. 모든 마스터 메이슨들이 비유적인 죽음으로부터 들어 올려져, 이전의 노고를 함께했던 동료들과 재결합했다. 이제 원하노니. 마스터 메이슨의 희미한 빛이 오로지 미래 위를 비춰주는 것을 보라. 이는 위로부터 오는 신성한 빛의 도움이 없이는 인간 이성의 눈이 관통해 볼 수 없는 신비한 어둠의 장막이다. 하지만 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너는 네가 지금 금방 비유적으로 들어갔던, 또한 이 덧없는 인생이 사그라질 때에 다시 그 차디찬 가슴으로 너를 받아들일 무덤 바로 목전에 서 있음을 알라.’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저 죽음의 상징들을 보며 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묵상하고 모든 인간의 연구 중 가장 흥미롭고 유용한 것인 너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되돌아보라.
아직 낮일 때에, 네게 주어진 사명을 행하라. 불멸의 원칙을 담고 있는 자연의 목소리를 들으라. 이는 우리에게 신성한 확신을 불어넣어줄 것이며, 생명의 주主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신을 우리의 발로 밟고 눈을 들어 위를 볼 수 있도록 해줄 증거를 지니고 있도다.’
- 죽음과 무덤의 상징
- 두개골과 교차된 뼈: 입문자는 열린 무덤과 그 안의 두개골과 교차된 뼈를 보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징하며, 도덕적 성찰과 자기 인식을 촉구합니다.
- 빛과 부활의 상징
- 밝은 아침의 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샛별은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며, 신앙과 순종을 통해 영적인 부활에 이를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 신성한 빛: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신성한 지혜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프리메이슨의 이상을 강조합니다.
6. 의식의 마무리
- 암호와 악수법: 마스터 메이슨으로서 알아야 할 새로운 암호와 악수법이 전수됩니다.
- 건축적 비유를 통한 교훈: 입문자는 건축과 관련된 비유들을 통해 사회적, 도덕적 자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 도덕적 완성: 마스터 메이슨 등급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완성을 추구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상징합니다.
- 지혜와 책임: 이 등급을 통해 입문자는 더욱 큰 지혜와 책임을 부여받으며, 프리메이슨 공동체 내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 영원한 진리 탐구: 죽음과 부활의 상징을 통해 입문자는 영원한 진리와 지혜를 향한 끝없는 탐구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아울러 나중에 다른 정규로지 모임에서 히람 아비프 살해 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각 부서에 인부들의 총 소집이 있었는데, 감독 격의 3명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그 음모를 획책했던 12명의 장인들이 왕 앞으로 나아와 자신들이 공모에서 빠져나온 때까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자백했다. 당연히 자신의 우두머리 장인의 안전이 걱정되었던 왕은 15명의 믿을 만한 펠로크래프트(동업 장인)들을 뽑아 히람을 찾아, 아직 살아 있는지, 비밀을 말할 것을 강요받아 고통받지는 않았는지 알아보도록 명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날을 정한 뒤, 그들은 3개의 펠로크래프트 로지로 나뉘어 성전의 세 출입구를 출발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수일이 흘렀고. 한 팀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두 번째 팀에게는 운이 따랐다. 심한 궁핍과 피로로 고생하던 중, 어느 날 저녁 누워 쉬던 한 형제가 일어나려고 근처의 작은 나무를 잡았는데 너무도 쉽게 뿌리가 뽑혀 놀라게 된다. 자세히 보니, 그 땅은 최근에 파헤쳐졌던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을 불러 힘을 합쳐 무덤을 열고 그곳에서 흉측하게 매장된 우리 마스터의 주검을 발견한다. 그들은 존경과 예를 다해 무덤을 다시 덮고 무덤 머리에 아카시아 가지를 꽃아 그 지점을 표시한 다음, 솔로몬 왕에게 그 비보를 전하기 위해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슬픔이 가라앉자 왕은 그들에게 무덤으로 돌아가 우리의 마스터를 들어 일으키라고 명하고, 동시에 그의 때 이른 죽음으로 인해서 마스터 메이슨(우두머리 석공)의 비밀들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 죽은 대가에 대한 마지막 조의를 표하면서 뜻하지 않은 표시나 증거 등이 있는지 특히 주의해서 볼 것을 이른다…..’
그러고 나서 나의 역할극에서처럼 펠로크래프트들이 히람 아비프를 일으켰고, 그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마스터 메이슨을 임명할 때에 그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의식은 계속되었다.
‘한편 조파(오늘날의 요파)로 조사를 떠났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던 세 번째 팀은 우연히 한 동굴 입구를 지나다가 깊은 애도와 후회의 소리를 듣는다.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동굴로 들어가던 그들은 그 속에 있는 자들이 살인자들임을 알고는, 모든 출구를 막고 그들의 범행에 대한 자백을 얻었다. 이에 그들을 묶어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니 솔로몬 왕은 그들의 극악한 범죄에 부응할 만한 죽음을 선고한다.
그 후 우리의 마스터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지성소 근처에 다시 묻힌다. 중앙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3피트( 90센티미터), 북쪽과 남쪽 사이 3피트. 그리고 5피트(1.5미터)가 넘는 높이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히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세속적이고 부정한 누구도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조차도 1년에 한 번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도 모든 육체는 부정하디는 이스라엘 법에 따라 속죄의 의미로 수도 없이 씻고 정화를 한 뒤에나 가능했다.
15명의 믿음직한 펠로크래프트들은 순결의 상징으로 흰 앞치마와 흰 장갑을 끼고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명을 받았다.’
행사는 제1, 2등급 때와 비슷하게 진행되었고 나는 완전한 마스터 메이슨으로 태어났다. 몇 개월 후, 그 로지 모임에서 진급 대상자가 아무도 없자, 한 전前 마스터가 제3등급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히람 아비프를 죽였던 그 세 악한들은 주벨라Jubela, 주벨로Jubelo, 주벨럼Jubelum으로 밝혀졌는데, 모두 함께 주이스Juwes로 불렸다. 그는 동굴에서 울려 나오던 ‘깊은 애도와 후회의 소리’ 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살인자들은 자신들이 행한 만행을 깊이 후회하며 그에 응당하는 끔찍한 형벌을 원했고. 솔로몬 왕은 각각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형벌에 처한다. 이것들은 의식에서는 설명되어지지만, 그것이 메이슨 신분증명 방법 중의 하나이기에 우리는 여기에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결론
황금 양털 기사단이나 로마의 독수리 기사단보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프리메이슨단은 형제애와 구제 그리고 진리를 목표로 하며, 자연과 과학의 숨겨진 미스터리들을 연구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사라진 결사단의 진정한 비밀은 다시 발견될 때까지 대체 비밀들로 대신된다.
프리메이슨의 핵심 인물은 솔로몬 왕 성전의 건축가인 히람 아비프라는 자로, 그는 자신이 이끌던 장인들 세 사람에게 살해당했다. 입문자의 양식화된 죽음과 부활은 그를 마스터 메이슨으로 만드는 행위이며, 무덤에서 들릴 때에 밝은 아침 샛별이 지평선에서 빛난다.
- 히람 아비프의 신비성: 히람 아비프는 프리메이슨 전통에서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지만, 유대-기독교 신화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으며, 이러한 신비성은 프리메이슨 의식의 중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 프리메이슨 의식의 해석: 일부 프리메이슨 회원들은 이 의식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회원들은 도덕적 또는 상징적 우화로 해석합니다. 이는 종교적인 신앙과 프리메이슨 의식 사이의 관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
- 프리메이슨의 종교적 중립성: 프리메이슨 의식은 종교적 초자연성을 포함하지 않으며, 이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프리메이슨이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교적 믿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기원에 대한 의문: 글에서는 히람 아비프 이야기의 기원과 프리메이슨 의식의 출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의문은 역사적 탐구의 동기로 작용하며, 프리메이슨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 의식의 상징적 의미: 프리메이슨의 의식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으며, 회원들이 도덕적, 철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이 의식들은 프리메이슨이 추구하는 형제애, 진리, 연구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Chapter 2 요약: 연구의 시작과 프리메이슨 기원의 탐구
이 장에서는 프리메이슨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들이 주목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전 기사단 기원설이 특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떠오르며, 저자들은 이를 중심으로 프리메이슨의 역사와 의식의 뿌리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프리메이슨 의식의 기원과 그 상징들이 현대 프리메이슨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결사단의 유래
이 책의 제2장에서 저자들은 프리메이슨의 기원에 대해 세 가지 주요 가설을 소개하고, 각각의 타당성을 탐구하면서 자신들의 연구를 설명합니다.
1717년 영국 그랜드 로지의 설립 이래, 결사단은 자신의 존재에 관해 개방적이었다. 오직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들만이 일반에게 노출되지 않았을 뿐. 하지만 우리가 지금 프리메이슨이라고 부르는 조직은 17세기 중반 이전의 비밀조직이었고, 정의대로라면 비밀조직은 공식 역사를 밝히지 않는다. 그에 따라 메이슨단이 일반에게 알려지기’ 전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 우리는 메이슨 역사가들이 고려했던 3가지 중요한 가설들이 있음을 알아내었다.
- 솔로몬 성전 기원설: 이 가설에 따르면 프리메이슨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던 시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가설을 연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 접근을 일단 배제합니다.
- 중세 석공 조합 기원설: 이 가설은 프리메이슨이 중세의 석공 조합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를 조사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반박 요소를 발견합니다. 특히, 영국에서 중세 석공 조합의 존재를 입증할 기록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당시 석공들이 복잡한 의식이나 암호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울러 그들이 그 외 유럽지역에서는 존재했다는 사실 또한 프리메이슨단이 이 유럽 조합들이 형성된 지역에서는 발전하지 않았기에 의미가 없다. 저자들은 이 가설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 성전 기사단 기원설: 세 번째 가설은 프리메이슨이 성전 기사단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입니다. 성전 기사단은 12세기에 창설된 십자군 수도사 기사단으로,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있다고 믿어집니다. 이 가설은 프리메이슨의 상징 중 일부가 성전 기사단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저자들은 이 가설을 보다 신빙성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프리메이슨과 성전 기사단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합니다.
저자들은 중세 석공 조합과 솔로몬 성전 기원설을 배제하고,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프리메이슨이 초기 성전 기사단과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 가설을 통해 프리메이슨의 기원을 설명하려 합니다.
노동을 제공하고 형제의 여성 가족들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포함하는 결사단의 고대 훈령에서 보이는 규약은 순회 건축가들의 집단보다는 비밀 조직에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가장 오래된 것이 15세기 말의 것으로 여겨지는 프리메이슨 단의 ‘구舊 훈령’ 을 연구하다가 ‘석공 가설’ 을 버릴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 이 훈령은 프리메이슨 단원의 행동과 책임을 정한 것으로, 중세 석공조합의 행동규칙에서 취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훈령 중의 하나가 ‘어떤 형제도 다른 형제의 생명과 재산에 해가 갈 수 있다면 어떠한 합법적인 비밀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 다. 당국에 의해 적발될 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그 시대의 유일한 합법적인 메이슨 비밀이라면 아마 이설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기독교인 석공들이라면 절대로 행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범죄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 성과 성전 건축가들의 비밀이 이설일 것이라고 생각될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직들은 그들의 단원이 은밀하게 교회에 반하는 죄인이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규칙들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게 누구든 이 훈령을 만들어낸 누군가는 모든 형제들이 이단으로 몰릴 위험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규칙들이 단순한 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 나라 법의 언저리에 살았던 집단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확신했다.
우리는 이렇듯 석공 가설을 지지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반박할 것만 수두룩한 데에 만족스러웠다. 반면 그 고대의 훈령’이 언급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역사가들이 많이 논의해 왔던 동시대의 또 다른 훈령은 매우 비밀스러운 고대의 목적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2주 동안 방문하고 있는 형제를 ‘고용’ 한 뒤 “그러고 나서 그는 돈을 받아 다음 로지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삐 이동하면서 안전한 거처를 찾는 자를 위한 대접이다.
반면 또 다른 훈령은 메이슨들이 형제 메이슨의 아내나 딸, 엄마나 여형제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막고 있는데, 이는 ‘안전가옥’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즉 집에 돌아왔는데, 자신의 침대에 자신의 아내나 딸이 메이슨 손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느니, 형제애의 서약을 깨는 것이 낫다는 것. 우리는 이 초기 메이슨 집단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또한 교회 및 국가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고도로 구조화된 체계를 만들어낼 만큼 죄책감을 느꼈을 이설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성전 기사단’, 정식 명칭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청빈한 동료 기사들The Poor Fellow Soldiers of Christ and the Temple of Solomon’ 은 영국의 그랜드 로지가 설립되어지기 거의 600년 전에 창설되었다. 이 십자군 수도승 기사들과 프리메이슨단 간에 어떠한 연관이 있다면, 우리는 1307년 10 월 기사단의 갑작스런 소멸과 프리메이슨단의 공식적 출현이 있기까지의 410년을 설명해야만 한다. 이 시간적 간극 때문에 메이슨이건 그렇지 않든 간에 수많은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이 이론을 지지하는 것들이 비의적인 난센스를 믿도록 하는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들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증거들은, 논의의 무게를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단의 연관 쪽으로 옮겼으며, 우리 자신의 연구 또한 그것을 증명했다.
솔로몬 성전
우리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리아 산과 연관된 성전이 네 곳 있음을 알아냈다.
역사는 한 장소에 3개의 석재 성전과 더불어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 들에게 영감을 주어 왔기에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상상의 성전이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솔로몬을 위해 지어진 원래의 성전은 그의 첩들을 위한 건물보다도 작은 수메르식 건물로서, 예배의 장소가 아닌 까다로운 태풍의 신 야훼의 거처로 세워졌다. 야훼 자신이 언약의 궤 안에 살았고 이 언약의 궤는 프리메이슨에게 상툼 상토룸으로 알려진 성전의 지성소 내에 안치되어졌다. 이 궤는 이집트식으로 만들어지고 꾸며졌으며. 이 첫 번째 성전의 동쪽 출입구에는 프리메이슨에게 보아스와 야긴으로 알려진 2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프리메이슨이 세계가 모르는 비밀을 가진 조직으로서 솔로몬으로부터 내려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원 기설만이 남는다. 우리는 초기 성전 기사단이 마지막 성전의 터를 발굴 했으며, 수많은 저자들이 이 기사단과 메이슨단의 연관을 보여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 첫 번째 성전: 3천 년 전 솔로몬 왕이 지은 원래의 성전으로, 기원전 약 10세기경에 건축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야훼의 거처로서 기능했으며, 언약의 궤를 보관하기 위한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 에스겔의 환상 속 성전: 기원전 570년경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노예가 되었을 때에 선지자 에스겔이 본 환상 속의 신전입니다. 이 성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유대 신앙과 후대 기독교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스룹바벨 신전: 바빌론 유수 이후 유대인들이 돌아와 지은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기원전 6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원래 성전의 규모와 영광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 헤롯 성전: 기원전 1세기경에 헤롯 대왕이 재건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존재했으며, 완성된 지 4년 만인 서기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오늘날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부르는 신을 모시기 위한 성전을 비롯한 거대한 건축물들을 많이 세우기 시작했다. 솔로몬 왕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으로 유명하지만, 연구를 진행해 나감에 따라 우리는 솔로몬 이전에 수천 년 동안 건축물을 후원했던 모든 건축자들과 왕들에게 ‘현명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음을 알아냈다.
어떠한 건축적 유산도 없었던 유대인들은 간단한 벽 하나 세우는 것 이상의 건축기술도 갖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티레의 페니키아 왕인 히람으로부터 고용된 장인에 의해 지어졌다. 비록 그 이름은 우리와 이전의 모든 연구자들에게 친숙하지만, 히람 왕은 히람 아비프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 13장에서 좀 더 논의하게 될 홀리 로열 아치 등급의 의식은 티레 왕 히람이 자재를 제공하고 또 다른 히람인 히람 아비프가 성전의 실질적 건축가였음을 확실하게 해주며, 심지어 이 세 인물(솔로몬과 2명의 히람)이 중요한 로지를 세웠고 마스터 메이슨의 진정한 비밀들을 유일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메이슨 입장에서는 이 성전이 건축 역사상 획기적인 건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보지만, 클라크와 다른 전문가들은 그 스타일과 크기, 설계가 그 보다 거의 천 년 전에 니누르타 신을 위해 세워진 수메르의 신전을 본떴다고 생각한다. 이 신전은 보통 영국 마을 교회 크기의 작은 건물로 솔로몬 궁정 크기의 반도 안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왕이 하렘을 위해 지은 건물이 적어도 야훼 성전만큼 컸다는 사실을 알아낸 우리는 그 위대한 왕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교회와 회당, 모스크가 세워진 목적을 안다면, 솔로몬 성전이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기 위한 장소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성전은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 경우에는 틀렸다. 아주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신의 처소’, 즉 야훼만을 위한 집이었던 것이다.
돌 하나도, 특별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아무도 그 성전이 정말 존재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세워졌다고 추정되는 때의 한참 후에, 구전 전통을 기록했던 유대인 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신전 중 가장 유명한 이 건물은 돌로 지어 졌으며 내부는 티레에서 공수해온 백향목으로 되었다고 한다. 기저부가 9큐빗(4미터 정도) 두께인 벽이, 전나무로 덮인 평평한 삼나무 목재지붕을 받치고 있다. 이 성전의 눈에 띄는 특징은 케루빔 조각(구약성서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 또는 짐승의 얼굴에 날개를 가진 초인적 존재)과 개화한 꽃들 사이에서 바닥과 벽. 천장을 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황금이었다. 내부는 길이 90피트(27미터) 정도에 넓이 30피트(9미터) 크기이며, 서에서 동으로 배열된 전체 건물의 입구는 동편 끝에만 하나가 있었다. 또, 한 쌍의 접이식 문이 있는 칸막이가 실내를 나누어 가운데에 높이. 넓이. 길이가 각 9미터인 입방체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구약에서는 ‘지성소’ 로, 메이슨 의식에서는 ‘상툼 상토룸’ 으로 불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바닥 정중앙에 놓인 길이 4피트(1.2미터), 넓이와 높이 2피트(61센티미터)의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직사각 상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언약의 궤다. 안에는 십계가 적힌 2개의 석판과 야훼 그 자신만이 들어 있다. 위에는 견고한 두꺼운 금판과 함께, 금으로 두껍게 싸인 목재 케루빔이 날개를 뻗어 이 귀중한 내용물들을 지키고 있었다.
이 케루빔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인기 있었던, 후광을 쓰고 날아다니는 통통한 아기들이 아니었다. 이집트식으로 피라미드 벽과 석관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지성소는 1년 중 속죄일 단 하루만을 제외하고는 어둠에 갇혀 있었는데, 그날은 대제사장이 국가적 속죄를 위한 제물인 희생양의 피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대제사장이 떠난 뒤에는 거대한 금사슬로 문을 둘러 더 작은 방을 큰 방으로부터 봉쇄했다. 후대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 방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세습 제사장)만이 사용했으며 문들 바로 앞에는 황금으로 덮인 삼나무 제단이 놓여 있었다. 또, 동쪽 출입구 밖에는 당연히 2개의 기둥 보아스와 야긴이 서 있었다.
성전 기사단은 이 건물을 자신들 결사단의 핵심 아이콘으로서 숭배했다. 하지만 그들이 발굴했던 건물은 또 다른 성전의 유적으로, 악명 높은 헤롯왕이 같은 자리에 거의 정확히 천 년 뒤에 세웠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솔로몬 성전의 이름을 따라 정했을까?
제3장: 성전 기사단 (Knights Templar)
기사단의 기원
흰 망토에 붉은 십자가를 두르고, 수염을 기른 채 악을 물리치고 순결한 자들을 지키기 위해 결연히 싸우는 십자군 전사의 모습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낭만적인 성전 기사단의 이미지는 복잡한 현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흰 망토에 붉은 십자가를 두른 것은 모든 십자군이 아니라, 성전 기사단이라 불리는 특정 집단만이 가진 상징이었습니다. 이들은 신비롭게도 갑자기 권력을 쥐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돌연 해체되었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종말은 수많은 추측과 전설을 낳았습니다.
약 200년 동안 성전 기사단은 전례 없는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들의 군사적 능력과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보물들은 이들을 매혹적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세 기사단과 현대 프리메이슨 사이에 정말로 어떤 연관이 있을 수 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두 세계처럼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그 간격은 점점 좁아집니다.
7세기 이후 예루살렘의 이슬람 통치자들은 유대교와 기독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하며 이 도시의 종교적 중요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11세기 말, 예루살렘을 점령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기독교 순례를 금지하였고, 이는 기독교 세력이 성전이라 불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성스러운 목적이 있었지만, 이 전쟁들은 잔혹하고 무자비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재탈환된 후, 기독교 순례자들은 점점 더 많이 성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정은 길고 위험했으며, 이는 예루살렘의 아말피 병원과 같은 시설의 설립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 병원은 성 요한 기사단이 운영하며 순례자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했습니다. 이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그들의 부도 증가했고, 예루살렘의 기독교 통치자들로부터 후하게 보상받았습니다. 결국 이 작은 조직은 성 요한 예루살렘 기사단으로 불리는 군사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1118년에 교황의 공식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프랑스 샹파뉴 출신의 귀족인 위그 드 파옹(Hugues de Payens)은 이 기사단에 영감을 받아 여덟 명의 기사와 함께 ‘그리스도와 솔로몬의 성전의 가난한 기사단’을 비공식적으로 창설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통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2세는 이 새로운 기사단을 지원하며,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으로 여겨지는 알 아크사 모스크 근처의 자신의 궁전에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했습니다. 성전 기사단의 주요 임무는 위험한 야파-예루살렘 간의 길에서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초기 기사들은 평신도로서 가난, 순결, 복종의 서약을 하고 수도승처럼 생활했으며, 처음에는 특별한 복장을 입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며 종교적 조직의 일원으로 행동했습니다. 1118년에 이들은 프랑스를 떠나 유대 사막의 수호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유명한 이야기는 몇 가지 의문점을 남깁니다. 왜 이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위험하고 이익이 되지 않는 임무를 자처했을까요? 그리고 보두앵 2세의 수석사제였던 샤르트르의 풀케르(Fulcher of Chartres)의 상세한 연대기에서 왜 그들이 처음 9년 동안 전혀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성전 기사단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1121년에 나타납니다. 당시 앙주(Anjou) 백작이었던 풀크 5세는 그들의 숙소에 머물며 30 앙주파운드(Angevin pounds)의 관대한 연금을 남겼습니다. 이는 그들이 초기에 작은 규모의 평범한 집단이었음을 시사하며, 위그 드 파옹이 그들의 본거지에서 9년을 보낸 후 새로운 구성원을 모집하기 위해 서쪽으로 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나?
초기 성전 기사단의 순례자 보호 임무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대신, 이들이 헤로데 성전의 폐허 아래에서 발굴 작업을 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많은 저자들이 성전 기사단의 진정한 설립 목적에 대해 추측해 왔습니다. 프랑스 역사가 가에탄 들라포르주(Gaetan Delaforge)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아홉 명의 기사들이 수행한 진정한 임무는 이 지역을 조사하고, 유대교와 고대 이집트의 비밀 전통의 본질을 담고 있는 특정 유물이나 문서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 중 일부는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연구자이자 저자인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은 이 이론을 지지하며, 성전 기사단의 주된 관심은 성전 부지에 있었고 그곳에서 광범위한 발굴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고고학자의 공식 보고서를 인용하며, 성전 기사단이 성전 폐허 아래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발굴 작업을 했다고 언급합니다:
“약 30미터 정도 안으로 터널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돌 부스러기들이 길을 막는다. 우리는 그 뒤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슬람 당국의 허가를 먼저 얻은 뒤에 현재 이슬람 관할하에 있는 성전 터를 발굴키로 엄격히 정했다. 당국은 터널의 노출된 부분만을 조사하고 사진 찍도록 허가했을 뿐, 그 어떤 발굴 작업도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작업을 마치고….. 우리는 터널의 입구를 돌로 막았다.”
또한 19세기 말 영국 왕립 공병대의 찰스 윌슨 중위는 성전 폐허 아래에서 성전 기사단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는 많은 오래된 유물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증거들은 저자들이 스코틀랜드 성전 기사단의 기록 보관자 로버트 브라이돈(Robert Brydon)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는 성전 아래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실제로 성전 기사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발견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습니다. 성전 기사단은 무엇을 찾고 있었으며, 결국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일부 저자들은 이들이 성전의 잃어버린 보물, 성배, 또는 언약궤를 찾고자 했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들이 무엇을 찾고자 했는가보다는 실제로 무엇을 발견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홉 명의 이 보물 사냥꾼들은 9년 동안 성스러운 유대교 성전의 부지를 세심하게 발굴하며 그들의 임무가 완료될 때까지 새로운 회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래 계획을 바꾼 무언가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1126년에 발생한 보두앵의 죽음이 위그 드 파옹으로 하여금 더 많은 구성원을 서쪽에서 모집하도록 촉구했을 것이며, 그는 300명 이상의 새로운 기사들, 막대한 부, 그리고 가장 흥미롭게도 교황의 승인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성전 규율 (Templar Rule)
기사단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인해 위그 드 파옹은 유럽 전역에서 모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그의 편지에는 성전 기사단의 임무에 대한 깊은 걱정이 담겨 있으며, 원래의 목적이 악마의 영향을 받아 약해졌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의 동행자인 앙드레 드 몽바르(André de Montbard)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후일 성자로 추대되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의 삼촌이었으며, 그는 성전 기사단의 주요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베르나르의 지지는 기사단의 교황 인정을 이끌어냈으며, 1128년 1월 31일 트루아 공의회에서 ‘라틴 규율(Latin Rule)’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규율은 성전 기사단을 정당화하고 교회 내에서 그들의 위치를 확립해주었습니다.
라틴 규율은 그 내용보다 생략된 부분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 규율에는 성전 기사단의 주요 임무인 순례자 보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생략, 그리고 기사단의 부와 권력의 증가는 성전 기사단 설립의 핵심에 매우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하며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새로운 모집자들은 가난, 순결, 복종의 서약을 하며, 모든 개인 재산을 기사단에 기부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전 기사단은 상당한 부와 영향력을 축적했고, 기독교 세계 전역의 영향력 있는 영주들로부터 기부와 지원을 받았습니다. 위그 드 파옹이 2년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기사단은 300명 이상의 귀족이 그의 지휘 아래에 있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라틴 규율’을 받은 지 10년 후, 성전 기사단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기존 규율을 대체하는 새로운 ‘프랑스 규율’을 그들만의 언어로 제정했습니다. 이 새로운 규율은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며, 특히 새로운 구성원을 위한 1년간의 견습 과정을 폐지했습니다. 더 흥미롭게도 중요한 조항이 변경되었습니다. 라틴 규율에서는 구성원들이 파문되지 않은 기사들의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프랑스 규율에서는 파문된 기사들의 회의에 참석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변화는 성전 기사단의 성장하는 자율성과 권력을 강조하며, 이들이 실질적으로 교황법의 관할 밖으로 자신들을 위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 기사단의 권력 상승과 그들의 진정한 임무를 둘러싼 신비는 역사가들에게 여전히 매혹적인 주제이며, 이들의 고대 비밀과 현대 프리메이슨의 기초와의 연관성에 대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성전 아래에서 그들이 발견한 정확한 내용은 역사의 지속적인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기사단의 조직
성전 기사단은 기사들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 아니었다. 정식 기사단원들 말고도 2개의 하위계급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기사들과 같은 귀족계층 이라기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노동계층이라고 말하는 모집된 하사관들 계층이다. 그들은 마부나 집사, 파수병 및 일반적인 지원군의 역할을 했다. 상위계급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붉은 십자를 착용했지만 외투 자체는 흰색이 아니라 암갈색으로 기사들에 비해 순결함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계층은 기사들의 영적 생활을 도와주는 성직자들이다. 그들은 기사단에서 유일하게 박식한 신부 단원들로, 기록 보관이나 의사소통, 때로는 복잡한 암호로 글을 쓰는 일을 맡는다. 프랑스어가 기사단의 일상 언어이자 행정언어였지만 이 다재다능한 신부들은 라틴어로 예배를 집도하며 현지 상인들과는 아라비아어로 흥정하고, 히브리어로 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된 신약을 읽을 수 있었다. 아울러 전사들의 영적 요구를 돌보아주었으며, 기사단의 십자가가 박힌 녹색 외투를 입어 구별되었다.
오늘날의 신부들처럼 이 성직자들 또한 성찬 시에 빵과 포도주를 신성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 과정은 휠씬 중요하게 여겨져, 성찬식 동안 실제로 빵을 다룰 때를 빼고는 언제나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고 한다. 빵은 일상의 세속적 더러움으로 더러위져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신의 성체를 다루듯이 손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흰 장갑을 꼈던 것. 흰 장갑을 끼는 것은 현대 프리메이슨과 확실히 똑같다. 프리메이슨들은 로지 모임에서 언제나 흰 장갑을 낀다. 왜 이런 관행을 지키게 되었는지 이유는 주어진 적이 없다. 혹시 성전 기사단과의 관련 때문일까?
메이슨과의 또 다른 관련성은, 그들의 종규에서 금욕의 상징으로서 외투 아래에 언제나 꽉 끼는 양피 속바지를 입도록 했던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오직 양피만을 사용해서 장식했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같은 위생시대에는 위험한 발상이겠지만, 이 성실한 기사들은 씻을 때조차도 속바지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오늘날의 프리메이슨들은 속바지를 입는 대신 로지 모임에서 새끼 양피로 된 에이프런을 입는데, 이는 순결과 우정을 상징하는 표지라고 한다.
유사점 하나가 더 있었다. 기사단의 전투 깃발인 ‘보쌍’ 이 검고 흰 2개의 블록이 위아래로 놓인 것이라는 사실. 검은색은 기사들이 기사단에 입단하면서 뒤에 두고 온 죄악의 세계를 상징하고, 흰색은 어둠에서 빛으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현대 프리메이슨의 로지는 언제나 중앙에 희고 검은 사각 무늬를 배치하며 로지 모임에서 모든 형제들은 흰색 셔츠에 검은 타이와 양복을 입는다. 만일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입장할 수가 없다. 왜 프리메이슨이 새끼 양피와 흑백 복장을 해야 되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려진 이유는 ‘우리의 선배 형제들이 언제나 이렇게 입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공통점들이 있지만 찾고자 하는 것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점들을 너무 강조하지 않겠다. 하지만 우연히 얻은 이런 강력한 우연의 일치들은 두 결사단 간의 좀 더 밀접한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열의를 부추기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성전 기사단이 그토록 발전할 수 있도록 해준 그들의 발견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
우리는 이제 성전 기사단이 헤롯 성전의 폐허를 힘들여 파헤쳤다는 사실과 결국에는 이교도로 몰려 몰락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기사단이 이교도의 신앙을 가지고 기괴한 의식들을 행했다면, 이는 그들이 발견한 문헌 때문이었으리라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 12세기의 기사들 이 고대의 기록들을 발견해내었다면, 그 당시에는 그들만이 그것들을 해석 하고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기사들 자신들은 문맹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들의 성직자들은 여러 언어로 읽고 쓰기가 가능했으며 암호를 만들어내고 해독하는 능력으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Chapter 4_ 영지주의와의 연관성
숨겨진 사본들
20세기는 잃어버린 사본들이 재발견된 시대로,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쿰란에서 발견된 이른바 ‘사해 사본’과 1945년 이집트 상부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입니다. 현대 프리메이슨은 종종 여러 면에서 ‘영지주의적’이라고 묘사되며, 이는 저자들이 템플러가 이러한 고대 문서와 관련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조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지주의 복음서
오늘날 ‘영지주의Gnostic’라는 용어는 초기 교회에서 한때 영향을 미쳤으나 나중에 이교에서 유입된 신화적 요소로 인해 이단으로 간주된 고대 문서들의 집합을 가리킵니다. 일부 영지주의 문서에는 소년 예수가 분노로 다른 아이들을 죽이고 희생을 치른다는 것과 같은 기이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문서들은 예수에게 귀속된 명확하고 단순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지’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gnosis에서 유래하며, 이는 지식이나 이해를 의미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아 인식과 자연 및 자연 과학에 대한 이해를 신에게 이르는 길로 여겼으며,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 아닌 신에게 이르는 길을 밝혀준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고타마 붓다나 무함마드가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했던 역할과 유사합니다.
영지주의 복음서는 신약 성서만큼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학계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45년 12월, 52개의 콥틱어로 된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상이집트 나그 함마디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350년에서 400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보다 약 300년 전에 작성된 저서들의 사본으로 여겨집니다.
이 문서들은 현지 아랍 소년 무함마드 알리 알-삼만과 그의 형제들이 육중한 돌 근처 부드러운 흙 속에 묻혀 있던 약 1미터 정도 높이의 봉인된 붉은 단지에서 발견했습니다. 보물이 들어 있을 것을 기대한 형제들은 단지를 깨 부수었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안에는 가죽으로 묶인 열세 권의 파피루스 책들만이 있었다. 그나마 건조한 그 책들이 불 피우는 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그것들을 집으로 가져간다. 다행히 어린 무함마드 알리는 경찰의 발견을 두려워하여 그 책들을 현지 사제인 알-쿰무스 바실리우스 압드 알-마시에게 맡겼고, 당연히 그 문서의 중요성을 알아본 사제는 일부를 카이로로 보내 평가받게 했습니다. 이 문서들은 결국 스위스 취리히의 융 재단 소속 교수인 질레스 퀴스펠의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마 복음서의 페이지를 확인했고, 이 페이지는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란 그는 황급히 나머지 문서들을 찾는데, 그것들은 이미 카이로 콥틱 박물관에 보내져 있었다.
퀴스펠 교수는 이 재발견된 사본들이 약 1,600년 전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형성에 결정적이었던 시기에 묻혀 있던 미지의 문서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어 억압되었습니다. 만약 이 문서들이 억압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적 정통성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조직적이고 신학적인 구조는 이 문서들에 담긴 사상을 억압함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적 부활
2개의 초기 기독교 전통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매우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영지주의 문서들은 부활을 신체의 부활이 아닌, 한 사람의 진정한 본질이 드러나는 깨달음의 순간으로 설명합니다. 영지주의 신앙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 존재는 영적으로 죽는 것으로 설명되는 반면, 삶 속에서 이 영적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죽음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외경 *필립 복음서*는 “부활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지한 기독교인들”을 조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부활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지주의 교회들은 부활에 관한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바보들의 신앙”으로 간주하며, 죽은 스승의 몸이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영적 진리를 실제 사건과 혼동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의 가르침의 비밀이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13장을 인용했습니다:
“천국의 비밀은 너희에게 주어졌으나,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의 비밀 지식이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즉 그것은 영적인 눈으로 ‘주를 보는’ 자는 누구든 자신의 권위가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에 필적하거나 심지어는 더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적 위협은 2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이자 가톨릭 정통 교리의 아버지인 이레니우스의 저작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영지주의적 견해가 교회 권위에 미칠 위험을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의 위대함에 있어서 누구도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심지어 베드로나 바울, 또는 어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여전히 유대교적 견해 내에서 복음을 가르친다고 말하며, 그들 자신은 사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냈으며, 더 현명하고, 더 지혜롭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영지주의 스승들은 사도 전통의 진정한 출처를 자신들만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교회 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르침과 정반대가 되는 주장이었다. 영지주의 *베드로 묵시록*에는 종교적 권위에 관한 정통 교회의 주장에 대해 부활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설명하는 다음 글을 가지고 반박하고 있다.
“자신을 주교나 부제로 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은 사실상 물이 없는 운하다. 그들은 비밀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리의 비밀이 자신들만의 전유물인 양 떠벌리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고 진정한 기독교의 형제애 대신 거짓 교회를 세운 것이다.”
영지주의 복음서를 번역했던 학자들은 이 관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셰필드 대학 도서관에서 영지주의 학자 일레인 페이절스가 쓴 다음 글을 발견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의 부활 개념이 가진 정치적 중요성을 알게 된다.
“부활 교리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깨닫는다 해도,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경험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회 질서 측면에서 보면… 부활에 관한 정통 교의는 다른 영향을 끼쳤다. 즉, 그것은 신에게로 이르기 위한 사람들 사이의 계급을 합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영지주의 교리는 이 질서를 파괴했으며, 모든 신자들에게 사제나 교주들은 모르고 있는, 신에게로 이르는 직접적인 길을 가르쳐준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 해석이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이유로 이단으로 규탄받은 이른바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의 영적 부활’ 에 대한 비밀 전통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난받았던 이유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정통 교회의 주교의 권위를 해쳤기 때문이었다.
부활은 프리메이슨 제3도 의식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단 여기서는 불법적인 살인과 시체의 복구 및 재매장 이야기가 뒤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템플러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 추가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저자들은 번역된 나그 함마디 문서들을 계속 읽었고, *도마 복음서*에서 추가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이 복음서에는 마크 메이슨리 의식과 직접 관련된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보여주어라. 그것이 초석이다.’”
‘예수 가라사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내게 보이라. 그것이 바로 모퉁잇 돌이니라.”‘
이 구절은 신약 성서의 구절을 반영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는 주께서 행하신 것이며, 우리 눈에 놀랍도다.’” (*마태복음* 21:42)
“너희는 이 성경 구절을 읽지 못하였느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초석이 되었다.’” (*마가복음* 12:10)
“예수께서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물으셨다. ‘그러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 기록된 의미가 무엇이냐?’” (*누가복음* 20:17)
이 공관복음서 구절들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버림받은 초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도마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버려진 돌을 보여달라고 명시적으로 요청하십니다. 이는 마크 메이슨리 의식에서의 요청과 동일하여 프리메이슨과 영지주의 간의 연결을 암시합니다. 또한, 다른 문서인 *도마 행전*에서는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한 사도가 하늘에서 장엄한 궁전을 짓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는 메이슨리 제1도 의식에서 북동쪽 모퉁이에서 다루어지는 내용과 평행을 이룹니다.
이러한 점들은 흥미롭지만, 템플러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영지주의적 기독교와 현대 프리메이슨 간의 연결이 이 단계에서 확정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지주의 가르침과 유사한 프리메이슨의 핵심 개념, 즉 살아있는 동안 “부활”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 교회의 형성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결론
템플러가 그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숨겨진 사본을 발견했다는 가정 하에 저자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로 알려진 초기 기독교 문서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영지” 개념이 교회의 “신앙” 의존성을 반박하지만 프리메이슨 사고와는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저자들은 초기 교회에 의해 정통으로 선택된 많은 교리가 종교적 신념뿐만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그분의 하늘 승천에 대한 믿음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의 핵심 요소였으며, 이 권위는 열두 사도들이 경험한 예수의 부활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자적 부활을 “어리석은 자들의 신앙”이라고 언급한 영지주의 문서들은 죽은 스승의 육신이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영적 진리를 실제 사건으로 오인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비밀 가르침에 의해 지지되었습니다. 2세기의 신학자 이레니우스는 부활에 대한 영지주의적 견해가 기존 교회 권위에 미치는 위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저자들은 나그 함마디 사본을 연구하면서 부활에 대한 이 해석이 초기 기독교 교회 내에서 거대한 논쟁을 일으켰으며, 영지주의와 연관된 기독교 단체들이 예수와 관련된, 살아서의 영적 부활에 대한 비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자들은 이 영지주의자들이 정치적 이유로 이단으로 규탄받았고, 그들의 지식에 대한 갈망이 정통 교회 주교들의 권위를 위협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저자들이 영지주의 복음서를 계속 읽으면서 프리메이슨 의식과의 강력한 연결점을 발견했고, 이는 초기 기독교 교회를 더 깊이 탐구하도록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의 기원과 신약 성서 복음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실제 사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5장: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였나?
또 다른 성모탄생 이야기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대한 교회의 역사적 해석이 얼마나 정확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합니다. 그들은 나그 함마디 문서나 사해 두루마리 같은 문헌들이 신약성경에 대한 교회의 해석들을 아주 다르게 조명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저자들은 기독교의 핵심 신화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교회의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한 남자가 누추한 곳에서 동정녀의 몸으로부터 탄생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문화와 종교 전통에서 오래되고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제국에서 유행했던 미트라의 숭배 이야기와 상당히 유사한데, 교회의 교부들은 이를 고의적으로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패러디 하는 악마의 이야기라고 치부했다.
저자들은 예수의 이야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신화들을 가진, 예수 이전에 처녀에게서 태어난 신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 디오니소스: 그리스 신으로, 말구유에서 처녀로부터 태어났으며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 퀴리누스: 초기 로마의 구원자로,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아티스: 기원전 약 200년경 프리기아에서 나마라는 이름의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인드라: 기원전 약 700년경 티베트에서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아도니스: 사랑, 다산, 전쟁의 바빌로니아 여신 이슈타르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크리슈나: 기원전 약 1200년경 힌두교에서 데바키라는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조로아스터: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처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미트라: 기원전 600년경 12월 25일에 말구유에서 동정녀로부터 태어났으며, 부활절에 부활을 축하받았습니다.
책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는 이름이 나중에 붙여진 그리스어 이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예수’라는 이름이 단순히 히브리어 이름 ‘예호슈아(Yehoshua)’의 그리스어 번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름은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 용어로 ‘승리를 가져올 자’ 와 같습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여호수아(Joshua)와 연결됩니다. 이 이름은 구약성서에서 나팔을 불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인물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이렇듯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 이름 예호수아를 그리스어로 단순히 옮겨놓은 것 뿐이지만, 문제는 ‘그리스도’ 라는 덧붙여진 이름이다.
“그리스도(Christ)”라는 칭호는 히브리어 “메시아(Messiah)”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저자들은 이 ‘메시아’ 개념이 유대교 전통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분석합니다. 유대교에서 메시아는 단순히 정의롭고 왕권을 가진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했으며, 후대 기독교 해석에서 부여된 초자연적인 구세주로서의 의미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어/아람어 용어(메시아)가 그저 단순히 ‘유대인의 정의로운 왕이 될 자’ 라는 뜻인 데에 비해, ‘속죄를 통해 구원을 가져다주는 자’ 라는 의미를 가져온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왕들은 메시아들과 연관이 있다. 즉 그들에게 메시아라는 말은 왕이 될 자를 의미했던 것이다. 이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의미들로, 메시아와 그의 다가올 나라에 관한 유대인의 개념에는 그 어떠한 초자연적인 의미들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노먼 코언은 유대적 의미의 메시아에 관해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기껏해야 야훼가 자신의 유대 백성을 통치하도록 명하고 인도하는, 위대한 군사 지도자나 현명하고 정의로운 통치자가 될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독교의 핵심이기도 한 인간의 몸을 입은 초월자 구세주의 개념은 히브리어 성서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메시아 개념
“메시아”라는 용어는 킹제임스 흠정역 구약성서(영국 국왕 제임스 1세의 명령에 의해 1607~ 11년에 번역된 성서)에는 단 두 번만 사용되며 신약성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시대까지 그것은 시리아나 바빌로니아, 특히 로마의 침략자들(유대인들이 ‘깃딤’ 이라 부르는)의 치하에서 벗어나 다시 주권을 차지할 날을 고대하던 유대인 사이에서 인기 있는 개념이었다.
단어 ‘메시아’ 가 신약성서에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번역가들이 초기 문서에서 히브리어 단어 ‘메시아’가 있던 자리에 그리스 단어 ‘크리스토스Christos’ 를 사용했을 경우에만 설명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Christos 에서 나온 ‘그리스도, 즉 크라이스트Christ’ 라는 호칭은 비록 그 단어 자체가 유일하게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메시아나 그리스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동의어로 여겨지게 된다.
기독교에서 발전된 신적 구원자의 개념은 히브리 경전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유대교 전통에서 메시아는 초자연적인 인물이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였으며,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도 왕들이 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유대교에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 왕국을 회복할 인물이지, 세계의 신적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텍스트는 또한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 전역에서 개종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들이 유대교 문헌을 자신들의 새로운 종교적 내러티브에 맞게 오해하고 재해석하며 심각한 신학적 변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그 의미를 재해석했고, 이로 인해 유대교의 전통적인 메시아 개념과는 다른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초기 기독교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대교 문헌을 왜곡하고, 그들이 원래 의도한 바와는 다른 해석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스스로를 유대교인으로 여겼고 서기 1세기 말까지 사람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유대교 종파로 보았다. 하지만 2세기에 이르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 근방에서 개종한 이방인들로서, 더이상 자신들이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문화적 약탈자들은 문맥이나 인정된 해석 따위엔 거의 상관없이, 원래의 주인들에 의해 정통 성서로 인정되지 않던 유대 문서들을 마음대로 인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서는 70인역 성서(일반적으로 LXX 로 표시)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도들은 여기에 새로운 문장이나 책 전체를 끼워 넣었으며,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성서에서 이 부분들을 제외시켰다고 유대인들을 고발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동안 기독교도들은 그들의 ‘새로운’ 구약성서에 만족한다. 하지만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학파 오리겐과 같은 학자들이 성서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회의를 갖게 되고, 결국 원래의 유대 성서가 유일하게 옳은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기독교 교회 내의 새 성서는 모두 파괴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지만, 이 논쟁은 곧 자신만의 성서를 가진 독립 종교가 되고자 하는 기독교적 욕망 속에 파묻혀버린다.
오늘날, 사실상 모든 서구인들은 정치와 종교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나 다른 시대도 같은 식으로 사물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란은 그 둘 사이의 어떠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2천 년 전 옛 유대와 갈릴리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가 자신들의 국가적 어려움과 무관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정치는 엄연히 종교적 문제였다. 국가의 안정이 전적으로 신의 손에 놓여 있었으니 말이다. 만일 자격이 있었다면 유대인들은 왕을 세우고 전쟁에서 적들을 쳐부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그럴 만한 자격이 없었기에, 신은 그들을 적들의 손에 넘겼다. 그러나 믿음 깊은 유대인들이 경건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의 통치자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굉장히 중요한 점이 놓여 있다. 구약성서의 어느 곳에도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가 오리라는 예언은 없다. 유대인들은 다윗과 같은 이 땅의 왕이 도래할 것을 기대했으며, 아무리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되길 바랐을지라도 예수는 다윗 혈통의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명실상부한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 자신을 포함해서 그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었다.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논쟁을 넘어선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이 초기의 오해를 잘 알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는 비록 유대인들이 그 단어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사용했다 해도, ‘영적인’ 해석이 진정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기독교와 유대교의 ‘메시아’ 라는 용어 사용에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고 인정하는 한, 교회는 그리스도(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근거로 구약성서률 사용할 권리가 없다. 그것은 뻔뻔스러운 사기일 뿐이다.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대인들은 신이나 구세주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첫 왕 다윗과 같은 자격 있는 정치적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주류 기독교가 가진 또 다른 문제는 예수가 여호와와 마리아의 신비한 관계를 통해 태어났다는 믿음이다.
저자들은 예수의 출생이 고대 중동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신과 인간 여성의 결합을 통한 출생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예수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던 것에 대해, 이는 단순히 왕권을 주장하는 자는 누구나 가졌던 고대의 호칭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파라오 이전부터 모든 왕들이 자신의 통치권을 신이 내린 것으로 주장해 왔으니 말이다.
두 명의 예수
이 장에서 가장 논란이 될 주장 중 하나는 십자가형 당시 두 명의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제안입니다. 일반적으로 바라바는 유대인 폭도이자 살인자로 여겨지지만, 저자들은 이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바라바가 단순한 이름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을 의미하는 호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바라바, 우리의 구세주 대신 악독한 유대인들이 놓아주기로 선택한 극악무도한 살인자.’ 이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 아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들의 외침은, 신약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비열한 천성에 대한 증거 하나로서, 그 후 2천 년 동안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가져온다.
하지만 ‘바라바Barabbas’ 가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호칭으로서 정확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 언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아람어로 ‘Bar’ 는 ‘~의 아들son of~’ 을, ‘Abba’ 는 문자 그대로 ‘아버지father’ 를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The Father , 즉 신God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로 인해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던 우리는 초기의 마태 필사본 27:16에서 이 남자의 전체 이름을 보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Jesus Barabbas예수 바라바’.
이 주장의 핵심은 마태복음 초기 사본에서 바라바를 “예수 바라바(Jesus Barabbas)”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Bar’는 ‘~의 아들’을, ‘Abba’는 ‘아버지’를 의미하며, ‘Barabbas’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저자들은 바라바가 단지 범죄자가 아닌,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인물, 즉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선택을 맡겼을 때, 그들이 선택한 것이 단순한 범죄자와 구세주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 사이의 선택이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군중들이 석방을 요구한 것은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진 바라바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중들의 요청에 따라 십자가형을 면하게 된 자는 바로 ‘예수, 하나님의 아들’ 로 알려졌던 자로, 이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름의 첫 부분은 아주 나중에 기독교 신앙을 끼워 맞추기 위해 <마태복음>에서 삭제된다. 오늘날 이런 선택을 ‘사실대로 다 밝히지 않기’ 로 완곡하게 부를 수 있겠지만 이는 교회가 대답하지 않을, 아니 대답할 수 없는 까다로운 질문들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 그 이상이다. 이는 복음서의 내용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복음서들은 이 다른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폭동에서 사람들을 죽인 유대 반역자로 고소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바라바는 범죄자가 아니라 유대 광신자로, 예수와 비슷한 죄목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사실들을 알아가면서 예수 재판을 둘러싼 전체 정황이 더 복잡해졌다. 같은 주장, 같은 이름에 더구나 같은 죄목을 가진 그들 중 누가 풀려났는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나? 실제로 많은 오래된 기독교 분파들은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었기에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교도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나 다른 자가 대신 죽은 예언자로서 존경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상징성은 주류 기독교의 절대적인 핵심이지만, 그 사건이 있었을 때에나 지금이나 많은 집단들이 그가 이런 식으로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이 해석은 전통적인 십자가형 내러티브에 의문을 제기하며, 초기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혼합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암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인물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루살렘의 주요 집단들
1세기 유대 사회에는 세 개의 주요 종파가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그리고 에세네파입니다. 에세네파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쿰란에서 1947년 발견된 사해사본을 통해서야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쿰란의 에세네파를 사두개파 및 바리새파와 차별 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신분과 상관없이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종교적 가르침의 유일한 수호자로 여겼습니다. 이들은 ‘의義의 스승’으로 기록된 제사장이 세운 ‘새로운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신 사이의 동맹을 재확립했다고 믿었습니다. 에세네파는 613항의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자신들을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이들은 바리새파와 마찬가지로 천사와 같은 낮은 등급의 신들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였다는 것을 확립했으며, 더 나아가 이들이 나사렛인들이자 예루살렘 교회였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만일 오늘날 교회가 쿰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였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왜 신이 그 자신의 공동체의 지도자가 아니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예루살렘 교회와 쿰란 공동체가 동일하다면, 왜 예수가 그들의 지도자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집니다.
사해사본과 예수의 연결
사해 문서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사용하는 특정 용어들 및 정확하게 같은 종말론 신앙을 지닌 한 종파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로버트 아이젠만 교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서기 1세기 40, 50년대경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가 예수의 형제였던 의인 야고보라고 주장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감독으로 인정받은 인물로, 이는 두 집단이 사실상 동일한 집단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30년 동안 쿰란 공동체는 바로 예루살렘 교회였던 것이다.
에세네파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유대인들이었으나, 어떤 면에서는 규율을 넘어 진보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쿰란 공동체의 새로운 용어는 기원전 1세기에 유대교 신학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타그믹 문학이 일반화되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의 언어였던 아람어로 히브리어 성서를 번역해놓은 것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히브리어로 예배가 행해지는 동안 일반 예배자들을 위해 아람어로 동시통역되었다.
통역자들은 자신들의 현 상황에 비추어 이해될 만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주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다윗의 집의 나라’ 와 같은 쿰란의 용어들 모두가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말하고 있다. 조지 웨슬리 뷰캐넌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내 나라는 여기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6)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었을 때에, 그는 그것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요한 복음>에서 모든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1)세상의 자들과 (2)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 세상에 속하지 않았던 자들은 예수와 그를 믿었던 추종자들로, “세상”이 아닌 “교회”에 속했다. “세상” 은 모든 이교도들과 예수를 믿지 않던 자들이었다.’
사해사본의 증거와 교회의 반응
사해사본과 신약성서에 사용된 용어들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가톨릭 교회는 이를 무시하려 했습니다.
사본을 해석했던 주교들, 드 보와 밀릭, 스케한, 퓌에크, 베누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당시 사해 문서 중 많은 것을 쉽게 볼 수 없는 점을 불평했다. 그중 존 알레그로와 에드먼드 월슨은 공통되는 증거들이 확실해짐에도 불구하고 쿰란 공동체를 초기 기독교로부터 떼어내고자 하는 치밀한 정책을 느꼈다고 말한다.
드 보 주교는 쿰란 공동체가 초기 기독교와 완전히 달랐다고 강하게 주장했으며, 또한 쿰란 공동체의 가르침에 너무 가까웠던 세례요한은 기독교 인이라기보다는 그저 기독교의 선구자 정도였다고 보았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예수의 임무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신약성서가 확실히 보여주고 있기에, 그러한 관련성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드 보는 또한 두 집단 모두 세례를 행했고, 둘 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소유재산을 공유했으며, 12명의 지도자로 이루어진 평의원이 있었고, 둘 다 메시아 및 하나님 나라’ 의 임박한 임재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1956년 9월 16일 존 알레그로는 드 보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당신은 더 이상 객관적으로 기독교를 다룰 수 없습니다 …. 최초의 유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에 관해 당신은 태평스럽게 얘기해 나가고 있지만, 아무도 당신의 유일한 증거가 (그렇게 부를 수있다면) 신약성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 보 주교와 그의 팀은 이 새로운 문서를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신앙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었으며, 의식, 무의식적으로 쿰란 공동체와 나사렛인, 즉 예루살렘 교회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제 사기는 끝났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였던 남자는 서기 30, 40년대의 중요한 기간동안 쿰란 공동체의 지도자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공동체의 크기는 그 당시 200명을 넘지 않는 정도로 소규모였고, 에세네파인들 전체는 4천명이 약간 넘을 정도였다. 비록 세습 제사장은 아닐지라도 수도자와 같은 거룩한 삶을 통해 곧 닥칠 구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 집단은 그랜드 마스터로부터 그 아래에 결혼한 남자, 또 그 아래에 여성, 특히 생리하는 여성에 이르는 극도로 위계적인 사회였다. 생리 중인 여성들은 어느 남자와도 접촉은 물론 눈조차 마주쳐서도 안 되었다. 번식은 삶의 필요악이었지만 육체에 탐닉했던 자들은 주요 공동체로 돌아가기 전에 철저한 정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곳의 일원들은 광범위한 외부 집단에서부터 내부의 핵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로 나뉘었으며, 상위의 단계에 오르려면 형제의 비밀을 외부세계로 누출했을 경우 끔찍한 벌을 받겠다는 비밀 엄수의 서약이 필요했다. 이는 메이슨과 상당히 비슷하게 들리지만 하나 다른 점은, 이 쿰란 수도자들은 그러한 위협을 상징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형벌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쿰란 수도자들에게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흰옷을 입고 청빈의 서약을 하며 끔찍한 형벌의 위협 아래에서 비밀 엄수를 맹세하고 비밀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하던 자들. 우리가 그린 예수가 포함되었을 급진적인 유대 집단의 그림 속에서, 이 집단이 주도한 유대 폭동으로 인해 결국에는 다시 한번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파괴의 운명을 맞는다.
쿰란 공동체와 예루살렘 교회가 사실상 동일한 집단이었다는 증거는 명백하며, 예수는 이 공동체의 지도자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공동체는 위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성전 기사단이 발견한 문서들은 초기 기독교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전 기사단과 프리메이슨의 연결
당연히 우리는 성전 기사단이 헤롯왕 성전의 페허를 발굴했으며, 무엇을 발견했든 간에 발견물은 성전 건설의 초기 단계였던 서기 1세기 초경과 그것이 파괴된 서기 70년에 숨겨졌음에 틀림없다는 의견을 세웠다. 이는 7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숨겨졌다는 애기다. 구리판에 새겨졌기에 동판 두루마리로 불리는 쿰란 사본은 공동체가 서기 70년 직전에 신전 아래에 어떻게 보물과 문서들을 숨졌는지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전 기사단이 발견한 것이 누구의 문서인지 추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생각대로 쿰란 공동체와 예루살렘 교회가 같은 것이었다면, 성전 기사단은 확실히 가장 순수한 ‘기독교’ 기록을 소유한 셈이다. 공관복음서보다도 휠씬 더 중요한 문서 말이다!
쿰란 공동체와 성전 기사단, 그리고 프리메이슨 모두가 솔로몬 성전의 영적, 물리적 재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절대로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으며, 아울러 프리메이슨이 관련된 이상 사기성 조합도 아니다. 왜냐하면 영국 그랜드 로지와 영적 성전 건설에 관한 그곳의 가르침은 사해사본의 발견보다 200년도 넘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 기독교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영지주의와 신약성서, 프리메이슨 모두 공통적으로 ‘모퉁잇돌’ 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쿰란 문서에서도 같은 언급이 있었다. 아이젠만과 바이즈는 사해 문서와 기독교 간의 관련들 중 이 점에 주목한다.
‘신약성서에 익숙한 독자들은 여기에서의 “공동체”와 “성전”이 기본적으로 같은 것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서들에서 예수가 “성전”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공동체 훈령 8:5-6과 9:6에서도 비슷하게, 영성이 부여된 “성전” 이미지를 사용하여 쿰란 공동체 평의회를 “아론의 지성소와 이스라엘의 성전”으로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것은 “속죄”와 “향기”, “모퉁잇돌”, “초석”에 대한 유사한 암시들과 함께 쿰란에 만연한 이미지였다.
예수의 가족
교회가 논의를 꺼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예수가 형제들과 아마 자매들도 있었다는 증거다. 예수가 형제자매가 있었다는 증거는 신약성서뿐만 아니라 1, 2세기의 여러 문서에서도 발견됩니다. 물론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경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다른 형제자매들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다행히 예수가 맏이였다는 증거가 있으니, 그가 동정녀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은 바로 탈락되지 않는다.
하여간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었고, 이에 대한 세 가지 주요 이론이 제시되었습니다. 헬비디우스는 예수의 형제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주장했으며,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이 요셉의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롬은 ‘형제’라는 단어가 사실 ‘사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서가 그리스도의 형제들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의 듀아이 성서는 다음 글에서 편파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헬비디우스와 다른 이교도들은 불경스럽게도 신성한 동정녀 마리아가 그리스도 외의 자녀를 낳았다고 추측한다.’
이 의견은 <마태복음> 13:55-56과 모순된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모친은 마리아라 하지 않느냐? 또,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니냐?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느냐?’
이에 대한 듀아이 성서 편집자들의 대답은, 비판적인 독자에게는 별로 다가오지 않겠지만 창의적이긴 하다.
‘그들은 우리 신성한 마리아의 자매인 마리아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므로 성서의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그들은 구세주의 가까운 친척, 형제로 불렸던 것이다.’
만일 이 이상한 설명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예수의 외조부에게 2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 둘의 이름이 모두 마리아였다는 말인가?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예수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수의 막내 남동생 야고보(Ya’acov: 영어로 Jacob,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James)는예수보다 거의 30년은 더 살았다. 예수의 막내 동생 야고보는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을 지킨 결과, 그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게 된다.
새로운 종교의 탄생
서기 70년 예루살렘이 붕괴된 후,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 기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예호수아라는 유대 영웅의 모습은 로마의 이교 신화들과 겹쳐지면서 사라져갔고, 그 결과 민족의 구세주 왕이 되고자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로마의 오래된 이교도전설과 결합했다. 일례로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전설은 2명의 새로운 하급 신인 위대한 성자 베드로와 바울로 번안된다. 또, 태양신인 솔의 생일이 12월 25일이었는데, 이날이 예수의 생일로도 적합하다고 여겨져 위대한 신들은 같은 축일에 기념될 수 있었다. 안식일은 토요일에서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Sunday로 옮겨졌고, 태양의 상징은 후광의 형태로 신과 성자의 머리 뒤에 놓인다.
로마제국의 새로운 종교는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위안이 되었다. 이생에서는 별 볼일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더 나을 테니 말이다. 역사 속의 대부분의 인류들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쾌락을 선호했던 그들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야 자신들의(지금은 하나가 된) 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일이 잘되어가면 찬양했다. 기독교는 사상이라기 보다는 승배 의식이 되었고 종교는 정치적 목적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로마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독교는 교회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사후에 더 나은 삶을 얻으려고 하는 순진한 백성들에 기반을 둔, 견줄 나위 없는 힘을 갖는 수단을 로마에 주었다. 17세기의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였던 토머스 홉스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표현한다.
‘교황제도는 그 무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소멸한 로마제국의 유령에 다름 아니다.’
이단의 진실
초기 로마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에 맞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파괴하는 임무에 착수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가 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뜻에 위반하는 모든 것의 제거였다. 그 결과 최근까지 신약에 주어진 빈약한 정보 외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세계 최고 종교의 기초가 되는 인물의 자취가 어떻게 그토록 희미한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반대세력들이 주장하는 부정적인 면들을 통해 역사적 인물의 존재를 밝혀내기도 하지만, 예수는(우리가 이 책 나중에 볼 슬라브어 요세푸스로 알려진 최근 발견 문서를 제외하고는) 1세기의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글 등의 문헌에도 확실히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에 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이유는 검열의 칼날 때문이지만, 다행히도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숨겨졌던 슬라브어 요세푸스가 예수에 관해 보여줄 것이니 말이다.
로마화된 교회는 구세주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면 모두 파괴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증거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는데, 영지주의 복음서와 사해사본이 그것들이다. 나아가 공식 교회를 설립한 교부들의 글은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이 파괴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뿐인가?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검열에서 살아남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의 글들은 실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2세기의 지도적인 기독교 사상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펜 끝에서 나온다. 외양상 그는 다소 영지주의적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헌은 거의 파괴되지 않았다. 다음은 그가 테오도르라는 이름의 알려지지 않은 남자에게 쓴 편지다.
‘카포크라테스파의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묵살한 것은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언에 언급된 계명의 좁은 길로부터 세속적이며 육신에 속한 죄의 한없는 심연으로 빗나간 “방황하는 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탄의 비밀” 을 알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자신을 거짓된 “암흑의 지하세계” 로 버리고 있으며, 스스로 자유롭다고 떠벌리면서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한 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힘을 합쳐 배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비록 약간의 진실된 말을 한다해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동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것들>이 진리는 아니며, 인간의 눈에 진실해 보일 <뿐>인 그 진리가 신앙에 따른 진실보다 우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신성한 영감으로 기록된 <마가복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 중 일부는 완전히 곡해된 것이며, 다른 것들은 비록 일부 진실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진실로 여겨지지 않는다. 날조가 끼어든 <것들>은 왜곡된 것이기에 소금이 그 맛을 잃기 때문이다. 마가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로마에서 베드로의 집에 묵었을 때에 주님이 하신 일에 관해 기록했지만, 전부는 아니었고 비밀스런 <행동들>을 암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신도들의 신앙을 키워주기에 가장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뽑아 쓴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가 순교하고, 마가는 자신과 베드로의 기록을 알렉산드리아로 가져와 이들 기록을 토대로 <지식gnosis >으로 향한 과정에 도움이 될 만 한 것이면 무엇이나 책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그는 좀 더 영적인 복음서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으며 주님의 깊은 가르침을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기록된 이야기들에 다른 것들을 더했을 뿐 아니라, 비법 전수자들이 해석을 통해 제7의 봉인으로 감추어진 진리의 가장 깊은 성역에 이를 수 있는 어떤 말들을 도입했다. 이와 같이 마가는 사전에 신중하게 자료를 준비 배열했으며, 죽을 때에 그의 책을 알렉산드리아의 교회에 남기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조심스럽게 보존되어 오직 허락된 자들만이 그 위대한 비밀들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더러운 마귀들은 언제나 인간을 멸망시킬 궁리를 하기에, 마귀에게 조종당해 거짓 기교를 부리는 카포크라테스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어떤 장로를 포섭하여 비밀 복음서의 복사본을 입수하고는 불경스럽고 세속적인 교리에 따라 해석했다. 뿐만 아니라 그 흠 없고 거룩한 글을 완전히 파렴치한 거짓과 섞어 더럽혔다. 이를 통해 카포크라테스파의 가르침을 담은 것 이다.
그러므로 앞서 말했듯 우리는 그들에게 져서는 안 되며, 그들이 거짓 주장을 할 때에 우리는 비밀의 복음서가 마가가 쓴 것이라고 인정해서는 안될 뿐 아니라 맹세코 그것을 부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진실된 <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유>로. 솔로몬의 지혜서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고 말하며 진리의 빛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로부터 숨겨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될 것임이라.”, 그리고 “미련한 자들로 어둠 가운데에서 깨어나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빛의 자녀들” 로서,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의 영의 “새벽 빛”에 비춤을 받고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기”에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마가복음서>의 말씀을 가지고 위조 여부를 따지면서 그대가 물었던 질문들에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후에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와 그 후, “그가 죽은 뒤 셋째 날에 살아날” 때 까지 <마가의 비밀 복음>은 다음의 <구체적인>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베다니로 같 새, 죽음으로 오라비를 잃은 한 여인이 다가와 예수 앞에 엎드려 “다윗의 아들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더라. 이에 제자들이 나무라자 노한 예수가 오라비의 무덤이 있는 동산으로 그녀와 함께 가니, 곧 큰 울음소리가 무덤에서 들리더라. 예수가 가까이 가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굴려 치우고 곧 그 젊은이가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가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니, 올려다보던 그 젊은이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동행하게 해줄 것을 간청하기 시작하더라.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그 젊은이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부자였기 때문이니라. 엿새가 지난 뒤 예수는 그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쳤고, 그날 저녁 젊은이는 <그의> 벌거벗은 <몸>에 아마포 옷을 걸치고 예수께 나와 그날 밤을 예수와 함께 보냈는데,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그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라. 예수는 그곳에서 다시 일어나 요단강 건너편으로 돌아갔도다.’
이 <말씀> 후에는,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그에게 와서”라는 문장이 나오고, “벌거벗은 <남자>와 함께 있는 벌거벗은 <남자>”를 제외한 모든 부분과 그대가 썼던 다른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또, “그리고 그가 여리고로 가니,”라는 <말씀> 후에 <비밀 복음>에는 오직 “그리고 예수가 사랑했던 젊은이의 여동생과 그의 모친, 살로메가 거기 있는데 예수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라는 말만이 나온다. 하지만 그대가 썼던 많은 다른 <것들은> 그래 보이기도 하며 거짓되기도 하다. 이제 진실된 설명과 진정한 철학과 일치하는 것은-….여기서 편지는 중간에 끊긴다.
비밀 복음서의 내용
클레멘트의 편지에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가 등장한다. 이 복음서는 마가가 예수의 깊은 가르침과 비밀을 담아 작성했다고 주장된다. 클레멘트는 이 복음서가 교회에서 비밀스럽게 보관되고 있으며, 비밀의 복음서는 허락된 자들만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가 비밀 복음에 관해, 그리고 더 중요하게 예수 그 자신이 행한 비밀 내부 의식에 관해 보여주는 이 자료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게 사실일까? 클레멘트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편지가 위조된 것일까? 하지만 왜? 그렇게 오래전에 누군가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을 했단 말인가? 편지의 골자로 돌아가, 우리는 아마포 옷만 걸친 벌거벗은 젊은이’ 라는 언급과 <마가복음> 14:51-52에 설명된,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체포될 당시의 설명되지 않은 사건 간에 강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편지에 따르면, 마가의 비밀 복음서에는 예수가 무덤에서 젊은이를 부활시키고 그와 함께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카포크라테스파가 왜곡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려 했다고 클레멘트는 주장한다.
카포크라테스파는 죄가 구원의 수단이라고 믿었던 특히 기분 나쁜 초기 기독교의 분파였고, 2명의 벌거벗은 청년에 관한 함축된 의미는 자신들의 기괴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사건을 오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클레멘트는 “소수만을 위한 신앙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지혜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으며, 비유로 표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성서의 기적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숨겨진 의미를 가진 비밀스러운 전통임을 시사한다. 물론 후기 기독교 검열을 통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지식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들은 그들이 평의회에서 논한 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귀로 들은 것은 지붕 위에서 크게 외치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진정한 지식의 비밀 전통들을 받고 그것들을 확실히 설명하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귀로 들은 대로 필요한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하지만 구분 없이 모두와 나누지 말고 비유로 말해야 한다.’
이것은 비밀스런 전통이 있었으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성서 속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에 숨겨진 의미가 있을 수 있었을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거나,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등의 기적들 배후에 비밀스러운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까?
메이슨과의 연결고리
마가복음 14:51-52의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른 청년’의 이야기는 마가의 비밀 복음서와 관련이 깊으며, 이는 프리메이슨의 의식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입문자는 흰 아마포만을 걸친다. 또한 성전 기사단의 외투도 원래는 소박한 흰 아마포였으며, 이는 메이슨과의 연결을 암시한다.
또 다른 2세기 기독교도 히폴리투스가 지은 책 <이단들에 대한 반박> 을 읽다 우리는 그가 나아센인이라고 부른 이단 종파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을 찾았다. 그들은 마리암네가 낳은 주의 형제 야고보로부터 전해 내려 온 신앙을 가지고 있던 자들로, 남녀의 성관계를 사악하고 더러운 행위로 여긴 반면, 생명수로 씻는 것은 중요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히폴리투스는 계속한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모든 인류 중 프리기아인들 다음으로 오래되었으며, 인류에게 <사물>의 형식뿐만 아니라 동시에 모든 신들의 의식과 주신제를 찬양했던 최초의 자들로서, 신성하고 존엄하며, 비법을 전수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이시스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곱 겹의 드레스와 검은 겉옷을 걸친 이시스가 찾아 헤매다 되찾은 것, 즉 오시리스의 외음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시리스가 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천상의 직물로 된 일곱 외투로 둘러싸인 존재가…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성서에 선포된다고 <나아센인들>은 말한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저자는 이 넘어짐이 별들을 운행시키는 그분에 의해 움직여지는 별들의 변화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나아센Naassene이라는 단어는 ‘Nasorean(나조레안)’의 다른 형식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했던 예수의 원래 추종자들이 택한 이름. 여자와의 성적 접촉에 대한 혐오와 정화의 주요 역할에 대한 묘사 또한 사해사본을 만든 쿰란의 에세네파 공동체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숫자 7에의 집착은 흥미롭게도 클레멘트의 편지에서 ‘제7의 봉인으로 감추어진 진리의 가장 깊은 성역’에 관한 언급과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또한 전체적으로 굉장히 메이슨적인 느낌을 받았다. 비록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결국 프리메이슨의 로열 아치 등급 의식을 보았을 때에 분명해진다.
*히람의 열쇠*의 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며, 그가 인간, 신, 신화, 또는 프리메이슨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펼칩니다. 이 장은 초기 기독교 분파들, 특히 나아센파(Naassenes)와 그들의 프리메이슨, 고대 이집트 의식, 에세네파(Essenes)와의 연결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논의를 제공합니다.
저자들은 2세기 기독교 작가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모든 이단의 반박(Refutation of All Heresies)*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검토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텍스트는 나아센파라는 분파를 언급하며, 그들은 마리암네가 낳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로부터 전해진 가르침을 따랐다고 주장하고, 남녀의 성관계를 사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물을 통한 정화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히폴리투스는 다음과 같이 이어서 설명합니다:
>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프리지아인들 이후 신성한 비밀을 가진 최초의 사람들이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시스(Isis)의 신비를 보호했으며, 이는 비밀스럽고 입문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신비는 이시스에 의해 잃어버렸다가 발견된 오시리스의 남근에 불과했다. 나아센파는 이 상징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오시리스가 물을 의미하며, 일곱 겹의 옷을 입은 인물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성경 말씀에 나타난 신성한 존재임을 시사했습니다.”
나아센파에 대한 이 언급은 저자들로 하여금 이들이 사해문서를 작성한 쿰란의 에세네파와 연결된 것으로 보게 합니다. 또한 나아센파의 숫자 7에 대한 집착은 클레멘트의 편지에 언급된 “일곱 번째 봉인”과 공명하며, 후에 프리메이슨의 의식과도 연결됩니다. 예수가 이 분파의 창시자가 아니라 일원이었다는 생각은 전통적인 기독교 내러티브에 도전합니다.
예수와 템플 기사단의 연결
이 장에서는 또한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원래 나소레안(Nasoreans) 또는 나사렛인(Nazarenes)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 용어가 단순히 지리적 출신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탐구합니다.
‘나사렛Nazareth 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Nazarene 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리라.’
마태복음 2:23에서 예수가 나사렛에 살았다고 하여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언급하지만, 저자들은 예수 시대에 나사렛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며 신약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나사렛의 예수”가 원래는 “나소레안 예수”였을 수 있으며, 이는 특정 종교 집단의 일원을 의미하는 칭호였다고 주장합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의 초기 활동 영역은 갈릴리 바닷가로, <마태복음> 4:13에 설명된 가버나움으로의 이동은 단지 역사 짜 맞추기의 일환일 뿐이다.
나조레안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이야기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 중요한 단서 하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온다. 스쿠버 다이버인 크리스는 시나이 반도 방문 중에, 홍해의 산호초 위로 잠수할 기회를 가진다. 배에 타자마자 친절하고 박식한 아랍인 가이드 에합에게 그 지역의 이름을 물었더니. ‘라스 나스라니’ 라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의 의미를 묻자 ‘라스’ 는 간단히 ‘머리’ 또는 ‘꼭짓점’ 으로 해석되고, ‘나스라니’ 는 작은 물고기 떼를 가리킨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물고기냐는 질문에, “그냥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평범한 작은 물고기”란다.
‘며칠 후,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기독교인들을 “나스라니nasrani”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확인해본 결과, 이것이 예수라 불리던 중요한 선지자의 추종자들을 부르는 아랍 표준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즉시 마음속에 많은 생각을 만들어냈다. 쉽게 말해, 초기 기독교인들이 작은 물고기들 이었다고?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이미지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고대의 사제-물고기 관계에 기초한다는 것이 좀 더 그럴듯하다. 에세네파의 단원들은 모두 사제처럼 헌신하고 율법에 순종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목욕을 했는데, 이 또한 그 용어를 사용할 좋은 이유가 되는 셈이다. 이 가설은 나조레안파의 단원들이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성지들을 순회하면서. 2개의 호弧를 사용하여 물고기 표시를 한 사실과 들어맞는다. 그런데 그 집단의 상징이 십자가가 아니라 물고기였다니…. 흥미롭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그 당시에는 그리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추가 연구에 따르면 나소레안은 에세네파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보다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예수가 교회의 창시자가 아니라 이 분파의 중요한 인물이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조레안 분파의 고위 인물들로서 추종자들을 모집했고, 따라서 생업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라기보다는 모집 활동의 의미에서 ‘어부’ 로 알려지게 되었을 수 있다. 물고기가 없던 사해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에 일리 있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타당성을 주기 위해 후대의 신약성서 저자들이 이 ‘어부들’ 의 기원을 물고기가 풍부한 갈릴리 바다로 바꾸었던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낚는 자”로 알려졌다는 이론과도 일치하며, 이는 에세네파의 의식, 특히 그들이 자주 행한 정화 목욕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연구가 진행되며, 형용사 ‘나조라이오스nazoraios’ 가 후에 기독교도로 알려지게 된 분파를 칭하는 초창기의 단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피파니우스는 리즈바르스키와 같은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한 바대로, 예수라는 인물(즉 교회)이 나온 분파의 원래 명칭 나자라이오이Nasaraioi라는 원시기독교 집단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는 다시 한 번 예수가 설립자라기보다는그저 한 명의 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셈이다.
2가지 점이 분명해졌다. 즉 예수는 나사렛 마을 출신이 아니며, 대신 스스로를 ‘물고기’ 로 여겼던 나조레안Nasorean 분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
이 장에서는 또한 이라크 남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영지주의 분파인 만다야파(Mandaeans)를 소개하며, 이들은 자신들이 나소레안의 후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창시자로 여기고 예수가 그에게 맡겨진 비밀 가르침을 배신했다고 믿으며, 이는 프리메이슨 의식과도 흥미롭게 일치합니다.
만다야파와 프리메이슨의 가능성 있는 연결
만다야파는 자신들을 “나초라제(Natzoraje)”라고 부르며, 이는 “나소레안”과 유사한 용어입니다. 그들은 “쿠슈타(Kushta)”라고 알려진 비밀 악수를 포함한 프리메이슨과 유사한 의식을 행하며, 이는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이 눈에 띄는 유사성은 저자들로 하여금 프리메이슨 의식이 이러한 고대 종교적 관행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가설을 입증할 정보를 찾으려 애쓰던 우리는 나조레안 분파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망연자실했다. 그것은 만데안 분파의 일부로서 남부 이라크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만데안 분파의 일원들은 자신들 종교의 기원을 예수가 아닌 야히아 유하나Yahia Yuhana, 즉 기독교인들에게 세례요한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의 책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비슷한 단어 ‘natzoraje’ 로 칭하며, 예수가 나조레안이었지만 그에게 위임된 비밀 교리들을 배신한 반역자이자 이단이었다고 믿는다. 그는 어떤 비밀을 지니고 있었으며, 누구에게 이 비밀들을 폭로했을까?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만데안파에 관해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다음 글에 주목했다.
‘이라크에 거주하는 작지만 열심인 공동체 만데안파는 영지주의의 고대 형식을 따라, 입문식과 황홀경 및 프리메이슨의 것들과 비슷하다고 일컬어진 일부 의식들을 행한다.’ 아콘 대롤Arkon Daraul: <비밀 단체들 Secret Societies>
그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직접 이은 한 집단, 또한 그들에 관한 최초의 설명 중 하나가 그들의 의식을 프리메이슨단의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집단 말이다. 예수가 배반했다고 여겨지는 비밀이 메이슨 의식 비밀의 일종이지는 않을까? 이 놀리운 생각은, 매우 중요한 어떤 사실을 밝혀낼 단서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만데안파가 자신들의 사제를 ‘나조레안’ 이라 칭하는 사실에서 확인된 가능성 말이다! 우리는 그 이름이 ‘비밀 지식’을 의미하는 ‘만다Manda’ 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만데안파는 ‘쿠쉬타Kushta’ 라고 불리는 악수를 하는데, 이는 ‘의로움’ 이나 옳은 일을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식의 입문자들에게 주어지는 악수법이다. 참으로 메이슨적이지 않은가?
메이슨적 뉘앙스는 계속된다. 만데안파는 입문자가 의식儀式적으로 죽었다고 여겨질 때 묵상을 하는데, 이는 프리메이슨단의 비밀이 마스터 메이슨 지원자가 의식儀式적인 무덤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질 때에 그의 귀에 속삭여지는 것과 똑같다. 이것은 이후 우리 연구에서 과거와 현대 프리메이슨 간의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해준다.
만데안파의 별
예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종교적 화석과 의식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시작하던 크리스는, 눈앞에 역사를 펼쳐줄 놀라운 단서들을 발견한다.
1세기의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에세네파가 선한 영혼은 바다 저 너머에 산다는 믿음을 지녔다고 보았는데, 그곳은 폭풍우도 눈보라도, 뜨거운 열도 없이, 바다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서풍의 부드러운 숨결로 새로워지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이 바다 건너 서쪽에 있는(때로는 북쪽) 목가적인 땅은 유대에서 그리스, 켈트에 이르는 많은 문화들에 공통되는 믿음이다. 하지만 만데안파의 믿음에 따르면, 너무나도 순수한 이 먼 땅의 거주자들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으며, 그 장소는 ‘메리카Merica’ 라는 이름의 별로 표시된다고 한다.
바다 너머의 땅, 메리카Merica라는 별로 표시되는 완벽한 장소…. 아메리카A-merica? 우리는 나조레안들에게 특별히 중요했던 샛별morning star과 서쪽의 별인 개밥바라기evening star가 똑같은 천체, 즉 금성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미합중국은 메이슨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통해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미 알고 있듯 진급한 마스터 메이슨은 샛별을 향해 바라보아야만 한다. 상징으로서의 별은 미국에 언제나 중요한 존재였다. 우리의 생각은 즉시 메이슨 의식과 로지 모임을 마칠 때에 미쳤다. 워십풀 마스터가 시니어, 주니어 워든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시니어 워든 형제여, 그대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서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워십풀 마스터.’
‘주니어 워든 형제여, 왜 동쪽을 떠나 서쪽으로 가는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워십풀 마스터.’
‘시니어 워든 형제여,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마스터 메이슨의 진정한 비밀입니다. 위십풀 마스터.’
이 장은 별과 별자리의 상징, 특히 만다야파가 바다 너머의 순수한 땅과 연관된 것으로 여기는 “메리카(Merica)” 별에 대해 탐구하며, 이는 이 고대 믿음과 아메리카 명칭 사이의 연결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로슬린 예배당의 미스터리
저자들은 그 후 스코틀랜드에 있는 로슬린 예배당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이곳은 템플 기사단과 프리메이슨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소로, 15세기에 윌리엄 싱클레어 경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이 예배당에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 이전에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로에와 옥수수 같은 신세계 식물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세계에 대한 지식이 콜럼버스 이전의 경로를 통해 유럽에 도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는 템플 기사단에 의해 전해졌을 수 있습니다.
곧 우리는 찾던 식물들을 발견했다. 남쪽 벽에난 창문 위로 궁형을 이루고 있는 옥수수와, 같은 벽에 연결된 상인방을 가로 질러 있는 알로에 선인장이 그것들이있다. 다른 곳에는 그밖에 알만한 식물들이 있었고, 어디에나 다산을 의미하는 켈트족 인물인 ‘그린맨’ 의 표시가 있었다. 그들은 세어보니 100명이 넘었는데, 식물들 속에는 더 많아 보였다.
로슬린 성당은 놀랍고도 신비한 장소다. 기독교를 고대 켈트족 민간전승 및 성전 기사단/프리메이슨과 잇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장은 나소레안, 에세네파, 만다야파, 프리메이슨 사이의 수많은 연결 고리를 강조하면서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연결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비밀의 첫 실타래를 풀어야 했다. 유대 종교의 핵심 요소들이 처음 어디에서 등장했는지 말이다.
댓글 남기기